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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부산] 서구 아미동 19번지 일본인 비석 마을.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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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때 백제하고 관계가 좋았죠. 당시 백제-가야-일본 3국 연합이였으니까요.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금관가야를 말하는 뜻이며, 당시 금관가야의 김해를 중심으로 3국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중국 남조의 문물과 가야의 철광석을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는 군사를 보내줬었습니다. 백제에서 왕자들을 일본으로 보내 교육시키는 경우도 많았죠. 많은 귀족들이나 왕족들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귀족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4세기 후반과 5세기의 고구려는 일본에게 두려운 나라였지만, 6세기 백제 고구려 일본 3국연합으로 친해진 나라입니다. 고구려의 불교 승려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16.03.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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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 불교전파는 일본 왕권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 일본 왕권정부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였습니다.) 신라가 통일을 하게되면서 한반도와 일본은 사이가 나빠집니다. 장보고의 활약으로 친해지는가 싶었지만, 왕과 귀족들이 장보고를 숙청하면서 다시 사이가 나빠집니다. 당시 일본에서 장보고는 일본 정부에게 신같은 존재였습니다. 중국과 교역을 하기위한 필수적인 존재였죠. 하지만 이런 인물을 정부에서 죽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더이상 중국과 교역을 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6.03.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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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여 건국되면서 발해와 다시 사이가 좋아집니다. 하지만 발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서로 관계가 옛날 백제처럼 좋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본과의 교역내용의 거의 전무합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왜구 해적들 때문에 소탕하기위한 사절들이 몇번 간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도 왜구 해적들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세력이 미치지도 않아서 서로 힘들었죠. 이것때문에 공민왕은 일본 무로마치 막부에 초기에는 사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대마도에 사절을 보낸 이유가 이때문일 겁니다.
16.03.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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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구 근절에는 실패했고, 조선이 건국됩니다. 초기 조선에서는 일본과 교역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일본에 수입할 물건이 없었거든요. 반면에 일본에서는 쌀수입이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번 요청도하고 왜변도 일으킵니다. 결국 세종때 계해약조로 교역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머리가 뛰어나셨던 이유가 계해약조로 일본에 수출한 미곡의 양을 충분하지 않게 고정한 것이죠. 필요한 양의 30%? 였던가? 정확한 비율은 기억이 안나네요. 하여튼 부족하게 주면서 조선 초기 일본은 조선에게 끌려다닙니다. 하지만 도요토미가 통일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죠. 전쟁이후 도쿠가와 바쿠후의 정권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일본과 조선은 친해집니다.
16.03.1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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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나라 문물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 통신사가 오면 정부 백정 가릴것 없이 환영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중화사상과 조선의 소중화사상을 볼 수 있죠. 메이지 유신 성공이후 친조선세력들은 모두 숙청당하고 정한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에 운요호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 이후는... ㅎㅎ... 저희나라로서는 안타까운 역사죠. 지금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현 일본정부의 주도세력이 메이지유신 세력들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 정부는 반일본세력이 아닙니다. 일본을 반대했던 세력은 과거에 모두 숙청됬거든요.(이 이야기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요즘 무서운 세상이라) 지금의 정부는 따져서 보면 친일본세력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반일본적 성향이라 문제가 생기는 거죠. 도움이 되는 답변이였으면 좋겠습니다.
16.03.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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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네 볼때마다 생각나는건데 귀신 나온다는 얘기는 KNN 방송에서도 직접 나왔었습니다.
16.03.1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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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ㄷㄷ | 16.03.18 01: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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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형제였을때가 있었나요??
16.03.18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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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서 봤는데 사이가 괜찮았던 적도 있다고 하네요. 그때 기억으로 적은 거라 ㅎㅎ | 16.03.18 01: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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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때 백제하고 관계가 좋았죠. 당시 백제-가야-일본 3국 연합이였으니까요.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금관가야를 말하는 뜻이며, 당시 금관가야의 김해를 중심으로 3국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중국 남조의 문물과 가야의 철광석을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는 군사를 보내줬었습니다. 백제에서 왕자들을 일본으로 보내 교육시키는 경우도 많았죠. 많은 귀족들이나 왕족들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귀족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4세기 후반과 5세기의 고구려는 일본에게 두려운 나라였지만, 6세기 백제 고구려 일본 3국연합으로 친해진 나라입니다. 고구려의 불교 승려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 16.03.18 17: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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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 불교전파는 일본 왕권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 일본 왕권정부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였습니다.) 신라가 통일을 하게되면서 한반도와 일본은 사이가 나빠집니다. 장보고의 활약으로 친해지는가 싶었지만, 왕과 귀족들이 장보고를 숙청하면서 다시 사이가 나빠집니다. 당시 일본에서 장보고는 일본 정부에게 신같은 존재였습니다. 중국과 교역을 하기위한 필수적인 존재였죠. 하지만 이런 인물을 정부에서 죽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더이상 중국과 교역을 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16.03.18 17: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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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여 건국되면서 발해와 다시 사이가 좋아집니다. 하지만 발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서로 관계가 옛날 백제처럼 좋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본과의 교역내용의 거의 전무합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왜구 해적들 때문에 소탕하기위한 사절들이 몇번 간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도 왜구 해적들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세력이 미치지도 않아서 서로 힘들었죠. 이것때문에 공민왕은 일본 무로마치 막부에 초기에는 사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대마도에 사절을 보낸 이유가 이때문일 겁니다. | 16.03.18 17: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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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구 근절에는 실패했고, 조선이 건국됩니다. 초기 조선에서는 일본과 교역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일본에 수입할 물건이 없었거든요. 반면에 일본에서는 쌀수입이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번 요청도하고 왜변도 일으킵니다. 결국 세종때 계해약조로 교역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머리가 뛰어나셨던 이유가 계해약조로 일본에 수출한 미곡의 양을 충분하지 않게 고정한 것이죠. 필요한 양의 30%? 였던가? 정확한 비율은 기억이 안나네요. 하여튼 부족하게 주면서 조선 초기 일본은 조선에게 끌려다닙니다. 하지만 도요토미가 통일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죠. 전쟁이후 도쿠가와 바쿠후의 정권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일본과 조선은 친해집니다. | 16.03.18 17: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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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나라 문물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 통신사가 오면 정부 백정 가릴것 없이 환영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중화사상과 조선의 소중화사상을 볼 수 있죠. 메이지 유신 성공이후 친조선세력들은 모두 숙청당하고 정한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에 운요호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 이후는... ㅎㅎ... 저희나라로서는 안타까운 역사죠. 지금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현 일본정부의 주도세력이 메이지유신 세력들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 정부는 반일본세력이 아닙니다. 일본을 반대했던 세력은 과거에 모두 숙청됬거든요.(이 이야기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요즘 무서운 세상이라) 지금의 정부는 따져서 보면 친일본세력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반일본적 성향이라 문제가 생기는 거죠. 도움이 되는 답변이였으면 좋겠습니다. | 16.03.18 18: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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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여몽 연합의 큐슈 침공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죽고 고려에 좋지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네요.ㅎㅎ | 16.03.18 2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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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역사왜건 | 16.03.20 23: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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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Sinnlichkeit 님에게서 설민석 강사님의 느낌이 보인다 ㅋㅋ 엄청나게 조리있게 역사를 꼼꼼히 보기쉽게 적어주시는게.. 좋은설명 감사합니다! | 16.03.21 0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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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 16.03.21 0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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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래 "저희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식민지 시대라는 이유도 있고, 지금 현재의 여러가지 상황때문에 "저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표현이 맞습니다.) 만약 보기 껄끄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 16.03.21 0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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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요새 나라 수준이 하도 부끄럽다보니 저절로 저희 나라라고 하게 되네요. | 16.03.21 0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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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좋은 댓글강의! | 16.03.21 0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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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질문에 이런 고급 답변이 달리다니!! 정말 좋은것을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16.03.21 03: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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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nlichkeit님!! 아무리 그래도 뻥치지 마세요 무슨 백제가 왕자들의 교육을 일본에 보내요 그냥 인질이지 인질의 의미 몰라요? | 16.03.21 06: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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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웨건의 서술 순서를 바뀌게 하지 읺겠다는 루리인들의 추천수 ㅎㅎ | 16.03.21 10: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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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백제의 왕자를 교육차원에서 보냈다는 것은 기록부족으로 인하여 여러가지 학설들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교류 차원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기록이 많이 없기 때문에 누구의 학설이 맞다고 할 수가 없거든요. 근구수는 칠지도를 일본으로 보냅니다. 일본에서 근초고왕을 오구나타케루와 동일 인물로 보고 있고, "야마토의 14대 천황은 중애천황이며 중애의 아버지는 오구나타케루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습니다. 즉 14대 천왕은 근구수왕인 것으로 보고있죠. 칠지도에는 "백자 왕세자가 성음에 의지하여 고로 왜왕이 되었다. 칙서를 만들어 후세에 전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자가 백제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간사이 지방의 무녀왕조(히미코)를 정복하고 세운 세력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일본 서기에는 야마토 장군이 백제국을 가서 백제왕족 주군을 포박하고 폭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야마토 장군이 백제 본국으로 가서 백제왕족을 폭행했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렇다면 일본 내에 백제 세력이 존재했다고 봐야하고 그 세력이 "백자"라는 나라로 봐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은 일본 학계에 꽤나 충격을 줬다고 합니다. 일본 신화에 의하면 야마토 여신이 꼬챙이에 찔려 사망하는 것이 있는데, 아마도 백자의 세력이 일본 무녀왕조를 정복하고 세력을 확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계기가 야마토의 장군이 백제왕족을 폭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16.03.21 12: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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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실에 대해서 일본학계랑 충돌이 옵니다. 우리학계는 일본 기록에 젹혀있는 초고왕을 근초고왕으로 보고 있는 것이고, 일본학계는 근초고왕이 아니라 초고왕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초고왕은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근초고왕은 초고왕계열 왕 세습을 이루었다고 해서 '근'자가 붙은 것이죠.) 따라서 일본 본국에 있던 "백자"라는 세력을 백제와 독립된 세력인가? 백제와 같은 세력인가?의 입장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서기 기록에 다르면 백자가 백제와의 교역과 철광석 루트를 전부 장악한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백자가 백제의 세력이 맞다고 보고 있고, 그 증거가 백제의 많은 왕족들이 계속 일본에 건너간 것을 보고 있죠. 많은 의문이 있지만 곤지왕의 기록만 분석해봐도 백자의 세력은 백제의 것이 맞다고 봅니다. 곤지왕은 개로왕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는데(5명의 부인과 건너감) 사마왕을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개로왕이 처형당하고 문주왕이 즉위하죠. 문주왕이 즉위하면서 곤지왕과 곤지왕의 아들들이 다시 백제로 건너갑니다. 문주왕 사후 곤지왕의 아들 심근왕이 즉위, 심근왕이 다시 죽고 동성왕이 즉위합니다. 그 다음에 무령왕이 즉위를 하죠. 485년에 일본에 계체왜왕이 출생을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 인문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곤지왕의 후손으로 기록이 되어있기 때문이죠. 계체왜왕은 507년 22살에 즉위를 합니다. 사마왕은 계체왜왕을 동생으로 여기고 거울을 만들어 주는데, 이 거울이 계체왜왕에 대한 일종의 신임장이라는 설이 통설입니다. 이 이유가 "오사카 아베노바시역에 위치한 아스카베 신사(飛鳥戶神社)의 원래 이름은 곤지왕신사(昆支王神社)였다."라는 것을 보면 그들은 곤지왕을 주신으로 모셨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일본의 일부에는 백제의 나라가 있었다는 것으로 봐야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16.03.21 12: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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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곤지왕에 대한 기록은 일본, 중국, 한국의 기록 모두 차이가 있어서 어떤 설이 맞다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주장하는 백제왕자 인질설은 일본에서도 소수의 식민학자들이 주장하는 설이며 일본 내에서도 무시당했던 학설입니다. 그런데 아베정권이 들어오면서 다시 부각되는 학설이기도 합니다. 백제왕자 인질설은 식민학자들의 주장이므로 많은 왜곡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16.03.21 13: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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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때 임나일본부 수업을 들었던걸로 기억이 나네요. 머리가 나빠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임나일본부는 일본이 식민지배의 근거로 하기 위한 좀 조작된 설입니다. 일본이 이전에도 한국(백제, 가야, 신라)를 식민지했었다는 설입니다. 그 증거로 광개토 대왕릉비에 왜구기록과 일본에 남아있는 기록등등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백제, 가야, 일본은 사이가 좋았으며, 왜구용병이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됬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제가 고구려에 무너지면서 백제귀족들이 일본으로 망명을 하게됩니다. 임나일본설에 나오는 한반도에서의 일본인의 활약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건 백제인의 활약과 동선과 활약이 비슷하여 | 16.03.21 13: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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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망명한 백제귀족의 기록이 살짝 조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때 교수님이 일본은 독도나 임나일본부나 게속 시간을 투자하여 역사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나 한국은 개소리로 연구를 안하고 있어 걱정된다고 했던걸로 기억납니다.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계속 싸워왔습니다. 중국이 강성해져 한반도로 내려오면 일본이 도와주고, 일본이 강성해져 한번도로 오면 중국이 내려왔던 친구이자 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중국의 문물을 가르켜주는 백제쪽이 더 발달한 시기였을 겁니다. 기억이 안나 마니 엉망이네요... | 16.03.21 1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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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nlichkei님의 글이 대부분 맞자고 생각이 드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때문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임나일본부는 보통 왜가 4세기 중엽에 가야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벌해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학설이지 않나요? | 16.03.21 13: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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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 그시절은 오다 노부나가같은  맹자들도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인지라  사이가 좋을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즉 전국시대이전이니까 하는 생각입니다 | 16.03.21 19: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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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 일본부설은 이미 논파된지도 오래고 한일 양국에서도 이젠 사장된 논리입니다. 일본계 유물이나 유적이 가야가 있었던 지방에 나온게 없는데 어떻게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지.. 아 그래도 일본쪽에는 꽤나 많은 한국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고 속일본기에서도 천왕이 자기 조상중 백제인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게다가 백제 멸망시기에 일본이 대량의 원군을 보내주죠 이는 한중일 3곳의 사료가 정확히 말하는 것으로 고대시기에는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 16.03.21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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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란 금관가야(김해)의 일본 주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이 임나일본부 일본 주둔지가 있음으로 인해 백제와 금관가야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설입니다. 임나일본부가 금관가야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나 임나일본부 설은 잘못된 학설이죠.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요청한 일본 군대(용병)들이 백제의 속국이였던 금관가야에 주둔했던 단순한 주둔지에 불과합니다. 즉 임나일본부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임나일본부 학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 16.03.21 23: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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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금관가야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던 이유는 백제가 일본을 이용하여 신라를 견제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백제 병력은 고구려를 견제해야 했기때문에 신라에 대해서는 일본으로 하여금 대신 견제하게 했던겁니다. | 16.03.21 23: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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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nlichkeit// 임나일본부는 없었습니다.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 임나일본부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런 이름의 단체가 있었다고 열변하는 모습은 참 안쓰러우나 단어자체가 성립이 되지않습니다. 일본이 일본의 국호를 명시한 시기가 8세기 후반이기 때문입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32554731 '그룹'이 여러명이신 모양이군요. 신기하게도 글이 순서대로 읽히도록 비슷한 숫자로 공감찍혀 있네요.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님들이 뭐하고 다니는 분들인지 다들 알고있습니다. | 16.03.22 09: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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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프로이트 // 임나일본부 라는 명칭 자체는 틀렸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동감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님이 링크하신 기사글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그 기사 내용 안에도 Sinnlichkeit 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히 퇴출될 것으로 보는 역사연구자는 드물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습을 바꾼 다른 '임나일본부'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에서는 가야를 지배했다고 하는 일본서기의 왜가 실제로는 백제라는 견해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활동한 왜국을 백제의 용병으로 보는 백제군 사령부설이 존재했다. 국내에서 김현구 고려대 교수 같은 이는 백제를 지원한 왜계 관료 집단으로 보며,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그것을 운영한 주체를 가야,그 중 안라(安羅)로 바꿔 해석한다.반면 이희진 서강대 강사는 임나 주재 왜의 대표부와 같은 성격을 지닌 기관으로 본다. 일본에서는 왜의 대(對)한반도 교역 기관설이라는 주장이 많은 편이며,이 외에도 왜인들의 자치기관 설(이노우에 히데오),왜의 사신으로 보는 설(우케다 마사유키) 등이 있다. 요컨대 임나일본부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기는 해도,그것을 이처럼 다양하게 해석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당분간 임나일본부설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 링크 기사 원문 중 명칭의 오류만 바로 잡는다면 Sinnlichkeit님이 말씀하신 가야에 주둔해 있던 일본에서 파견한 백제의 일본 용병들 설은 학계에서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 일본인의 한반도 남부 주둔에 대해서 이유는 다들 다르게 해석하나 그들이 존재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음을 님이 올리신 기사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16.03.22 10: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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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수정하자면 일단 세종대왕이 처음부터 약조 맺고 쌀 수출 조정한게 아니라 삼포개항하고 수교까지 맺었는데 왜구 놈들이 다시 왜변을 일으켜대니까 참다못해 약조를 맺은겁니다. | 16.03.22 1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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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과거의 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은 그냥 괜찮은 이웃국가였을테죠. 근데 임진왜란, 대한제국 강제병합으로 빼도 박도 못하는지라..
16.03.18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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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부터 왜구 때문에 피곤한 것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조선통신사도 있었고 조선 몇몇 대에서는 조선을 상국으로 인정해준 적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아쉬운 사이죠.. | 16.03.18 02: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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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는 사실 일본 국가가 아니라 해적이었다죠. 중국인도 있고 동남아인도 있고 그랬다네요. 그냥 통칭해서 왜구라고 한거 ㅎㅎ | 16.03.18 1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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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면 중국도 6.25때 북한군과 남한 밀고 들어오기도 했었죠.. 그래도 일본군들이 한 야만적인행동에 비하면.... | 16.03.18 1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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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는 일본 지방 호족들이 사주한 사략해적인데요? 거기에 다른 국가 인원이 일부 포함되어있다고 국가성 옅어지는거 아닙니다. 애초에 일본애들도 그거 와코라고 자국 역사의 일부로 취급하고 있어요. | 16.03.21 01: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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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와코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은 13세기~16세기의 일입니다. 고려 후기~조선 전기까지의 일이죠. 도요토미가 해적 금지령을 내린 이후 해적들은 대부분 사려졌습니다. 삼국시대때는 단순한 노력질 하는 해적들을 말하는 것이고 일본인이 주축으로 신라인과 중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와코 초기에는 일본인을 중심으로 소수의 고려시대 천민이나 일반 백정(농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와코 후기에는 중국인이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료들이 많아서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대략 70%의 중국인 30%의 일본인으로 추정합니다. 중국인들은 와코를 倭寇(와커우)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명칭이 더 있지만 와커우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전국시대 이후 일본인 해적은 사라집니다. 전국시대 이후의 해적들은 모두 중국해적들입니다. | 16.03.21 01: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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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왜구는 대마도에 사는 도적들만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정확한 표기가 되어있지 않아서 보통 '왜구=일본 본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다르죠. 왜구는 경상도 해안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에서도 약탈행위를 일삼았습니다. | 16.03.21 1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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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nlichkeit// 전국시대 이후 특히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에서 노략한 함선등으로 인해 일본의 조선기술은 크게 발달합니다. 더 심한 왜구의 피해를 입게 되는 기점이 되는 시기입니다. 완전 반대로 알고 계시네요. 혹은 '모종의 이유'로 그런척 하고있는 것이거나. | 16.03.22 09: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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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접한다는 동네네요 ㅋㅋㅋ 귀신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저기서 자면 가위눌리면서 기모노입은 여자귀신과 강제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그곳....
16.03.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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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ㅉ | 16.03.18 17: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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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 그거 9라라네요 ㅋㅋ | 16.03.18 2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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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것 참 구미가 당기는군요! 마침 사는 것도 귀찮고 죽기도 싫은 어정쩡한 처지인데 처녀귀신이랑 붕가해서 동정 탈출하는 김에 운좋게(?) 빙의까지 되면 귀신은 내 몸으로 새 삶을 얻고, 나는 몸속에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앉아있으면 만사 해결될테니 서로 윈윈 아닙니까? ㅋㅋㅋㅋㅋ | 16.03.21 03: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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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귀신: 히익 키모이! | 16.03.21 03: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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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깃.. | 16.03.21 1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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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중인 그랜드혀느님//수명이 준대요......ㅋㅋㅋ | 16.03.21 1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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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중인 그랜드혀느님// 죄송하지만 그런거 없습니다 ㅠㅠ | 16.03.21 2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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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 깔린 잔디밭이 있는!! 부경대!! 그러나 공대라서 용당캠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농담이고 귀신이 무서워서 사진으로만 만족해야겠네요...겁이 무진장 많은지라
16.03.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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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부산에 한군대 ㅋㅋ 부경대연 ㅋㅋ | 16.03.18 2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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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유명한 그곳이군요ㅎ
16.03.1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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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부산 다운 모습이면도, 한국과 일본간의 애증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모습이군요.
16.03.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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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 귀접되는곳으로 유명한 그곳아닙니까
16.03.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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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비석마을이라고 해서 부산내 일본인공동묘지가 따로 보존되어 있는건가 싶었더니 비석이 그대로 다른 집터나 계단등으로 활용된거군요.
16.03.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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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당시 피난민들이 살곳이 없어서 저기까지 갔는데... 그 무덤 위에 걍 벽 올려서 가건물처럼 집을 짓고 살았다고.... 그래서 그런지 방바닥 파면 막 항아리 나오고 그랬다네요... 집도 정사각형의 집들이 대부분이라고...
16.03.2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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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이대로 과거사를 묻고 왜곡하는 이상 후손들과는 진정으로 친해지기는 힘들듯
16.03.2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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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토성동 살때 아미동 친구집에 자주 버스타고 갔었는데... 그 땐 저런 비석이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16.03.2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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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는 절대 일반화시키면 안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도움 준 사람도 있고, 아픔을 준 사람도 있고, 반대의 입장으로 될수도 있고... ㅜ.ㅜ
16.03.2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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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일본인 비석만 있는게 아니라 그냥 마구잡이 식으로 돌없어서 가져다 씀 한국인 일본인 할것 없이 다섞여있음
16.03.2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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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계단이 비석이군요 ㅎ
16.03.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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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도만 봐도 그 당시 일본의 관계를 대충은 알수있음. 그때는 일본이 주종관계에서 "종"이었으니까.
16.03.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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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백과사전 보니까 완벽한 주종 관계는 칠지도에 적힌 한자 때문에 한일 역사계가 다른 견해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종이었다고 못밖기 보다는 파트너라고 보는 것이 더 유연한 견해라고 하더군요. | 16.03.21 13: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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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부산답고 부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 동구와 중구 방면이라 생각됩니다. 산복도로쪽에 조성된 주택가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여기는 항구도시라는 느낌을 잘 살려 주는거 같습니다. 일제시대 건물, 70~80년대건물도 곳곳에 남아있어 구석구석에서 옛 향수도 느낄수 있구요. 사진질하러 비석마을에 자주가는데 솔직히 말해 크게 볼만한건 없습니다. 그냥 일반 주택가에요. 저렇게 비석으로 축대 만들어 놓은곳이 곳곳에 있는게 아니라 구석구석 잘 찾아봐야 한두개 눈에 띄는 정도입니다. 근데 비석마을을 꼭 가봐야 하는 이유가 저곳이 전망이 정말 좋습니다. 비석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계속 길따라 내려오다보면 가운데 버스정류장 푯말이 있는 갈래길이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쪽 오르막길로 가서 길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용두산공원, 영도, 부산항이 다 보이는데 정말 멋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 마지막에 덕수네집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을 촬영한 곳이 여깁니다.
16.03.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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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건물은 3년 전인가 초량시장 끝자락에 있던 것이 허물어 지면서 초량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어릴때만해도 일본식 목조 건축물 엄청 많았었는데. 너무 때려 부숴버리는 거 아닌가 싶네요. 하나 정도는 남겨놓고 곱씹어도 좋을건데.. | 16.03.21 13: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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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기모노입은 여인들이 막 남자랑 한다는 그곳인가요?! 헠헠..
16.03.2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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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시는 분들이 착하셔서 그렇지... 갠적으로 본인 같았으면... 그냥 비석모두... 똥수간 맨홀 매꾸는 돌로 전부 썼을겁니다... 하도 일본놈들이 우리조상들에게 뒷통수를 쳐대서리...
16.03.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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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10년을 주기로 사이가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하고 있죠. 지금은 나쁜 쪽입니다만... 아마 6~7년 뒤에는 다시 좋아질지도 모릅니다.
16.03.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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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일본이 친해지고 싶으면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 포함한 조선인 합사 금지, 위안부 공식사과와 소녀상 인정, 독도 영유권주장 포기, 교과서 등에 침략전쟁이라고 표기하는 등 해결해야 할게 산더미입니다 그거 없인 한일우호는 그냥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고 양측 불신감밖에 안키우죠 그리고 현재 일본 꼴을 보니 그럴 가능성은 참 낮아 보이고요
16.03.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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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면 그 영화관련 무슨 건물 있는데 거기도 가보셨나요 좋습니다
16.03.22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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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본을 우호적으로만 생각하시는듯.
16.03.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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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맘통하는 친구 2~3명만 생겨도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생깁니다. | 16.03.22 2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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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을세우는건좀.. 식민지떄 사람들인데..
16.03.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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