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웹이 두번 연속 베스트로 밀어 주다니..
로또 사야되는 건가..
일 때문에 외국에 좀 나갔다 왔더니
내 고장 부산이 너무 그립고 좋더군요.
그래서 요즘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보통 외부인들은 감천 문화 마을만 아시던데
감천 문화 마을 입구에서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곳에 비석 마을도 있으니
꼭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댓글로 한일 고대중세 관계사를 쉽게
정리해주신 Sinnlichkeit님께 감사드립니다.)
비석 문화 마을에 관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dF3OGdu4jrY
부산시 서구 아미동에는 비석 문화 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감천 문화 마을의 길건너에 지역입니다.
왜관이 있던 시절 부터 부산에는 일본인 묘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왜관은 초량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용두산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약 11만평 가량의 대규모 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인 묘지도 이 용두산 공원 쪽에 있었는데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지금의 아미동 쪽으로 위치를 이전했다고 하네요.
해방 후, 전쟁을 피해서 내려온 사람들이 살곳을 찾아 산쪽으로 올라가고
그때 정착을 한 곳이 바로 이곳 비석마을이라고 합니다.
공동묘지였는데도 사람들이 이곳에 오게된 것을 보면
삶에 대한 애착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강한 가 봅니다.
부산에는 특히 산에 집이 많습니다. 평지가 별로 없고 산지가 많죠.
그래서 부산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지에 깔린 잔디밭이 있는 캠퍼스에 다니고 싶다."
제가 알기로 거의 대부분이 대학교들이 산에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비석 문화 마을도 산에 걸쳐 있는 마을입니다. ^^
제가 사는 집 뒷산의 작은 오솔길을 넘어가면 감천 문화 마을로 가는 숲이 나옵니다.
홍매화가 예쁘게 피었던데 예쁘게 못찍었습니다.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따라가면 됩니다.
사실 이쪽으로 안가고 감천 문화 마을을 가로질러 가도 되죠.
달동네 특유의 빛바랜 느낌이 아주 매력적인 곳입니다.
달동네가면 잘 찍어오는 피사체. 빨래 집게 되겠습니다.
부산항이 이렇게 잘 보이는 곳입니다. 매력적인 곳이죠.
부산의 민낮을 만끽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실 요즘 해운대에 가면 여기가 부산인지 외국 도시인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죠.
제가 37년을 넘게 살아온 부산은 이렇게 정다운 느낌입니다..
아직은 어려보이는 잘 생긴 백구와 만났습니다.
처음 발견한 비석입니다.
묘법까지는 알겠는데 다음 한자가 잘 안보이네요.
아마도 불교적인 어떤 의미를 세겨둔 느낌입니다. 비석이겠죠?
니시야마 가의 묘.
쇼와(소화, 전쟁일으킨 일왕이 통치하던 시기 1926~~1989) 14년 8월
미야지마 케사타로 세움. 이라는 의미인 것 같네요.
일본인들의 비석이 이제는 한국인들의 집을 받치고 골목을 이루는
재료들이 되어 있네요. 가끔 한국에 관심 많은 일본인들이 이런 비석들을 보고 싶어
비석 마을에 온다고도 하니 참 재미있네요.
원래 이웃나라들끼리는 그렇게 사이가 안좋다고 하죠.
영국과 프랑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한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은 오랜 옛날 부터 형제였다가 원수였다가를
왔다갔다 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형제보단 원수에 더 가깝겠죠?
(이 부분은 Sinnlichkeit 회원님께서 댓글로 설명을 잘해주셨어요.)
여튼 이렇게 지극히 한국 스러운 골목에서 일본을 만나니 신기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고 후손들이 사는 시대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전에 일본에서 잠시 생활하며 만났던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저를 친구로 대해주고 안부를 물어주시던 어르신들도 계셨고 또래 친구들에게도 신세도 많이 졌고,
근데 정작 양국에 친구나 지인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서로를 나쁘게만 보더라구요. 안타깝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참 큰 벽과 오해가 있다는 생각을 했네요.
한국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 물러나고 일본에서는 정정당당하게 역사를 책임지는
세력들이 생겨나서 근대의 아픈 기억이 깨끗하게 씻겨버렸으면 좋겠습니다.
p.s.여담인데 이 지역에 괴담이 있다고 하는데요. 가끔 일본인 귀신들이 출몰한다고 하네요.
저도 어디서 들은 거라서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어디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ㅋㅋ
비석들을 모아서 추모 공원을 세우겠다고 하네요.
국가 감정을 떠나서 양국이 이렇게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한일 양국의 성숙한 배려 의식을 기대해봅니다.
2016. 3. 18
베스트 간 기념으로 감천 문화 마을 사진도 몇개 풀겠습니다.
부산 많이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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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때 백제하고 관계가 좋았죠. 당시 백제-가야-일본 3국 연합이였으니까요.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금관가야를 말하는 뜻이며, 당시 금관가야의 김해를 중심으로 3국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중국 남조의 문물과 가야의 철광석을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는 군사를 보내줬었습니다. 백제에서 왕자들을 일본으로 보내 교육시키는 경우도 많았죠. 많은 귀족들이나 왕족들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귀족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4세기 후반과 5세기의 고구려는 일본에게 두려운 나라였지만, 6세기 백제 고구려 일본 3국연합으로 친해진 나라입니다. 고구려의 불교 승려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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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 불교전파는 일본 왕권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 일본 왕권정부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였습니다.) 신라가 통일을 하게되면서 한반도와 일본은 사이가 나빠집니다. 장보고의 활약으로 친해지는가 싶었지만, 왕과 귀족들이 장보고를 숙청하면서 다시 사이가 나빠집니다. 당시 일본에서 장보고는 일본 정부에게 신같은 존재였습니다. 중국과 교역을 하기위한 필수적인 존재였죠. 하지만 이런 인물을 정부에서 죽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더이상 중국과 교역을 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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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여 건국되면서 발해와 다시 사이가 좋아집니다. 하지만 발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서로 관계가 옛날 백제처럼 좋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본과의 교역내용의 거의 전무합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왜구 해적들 때문에 소탕하기위한 사절들이 몇번 간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도 왜구 해적들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세력이 미치지도 않아서 서로 힘들었죠. 이것때문에 공민왕은 일본 무로마치 막부에 초기에는 사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대마도에 사절을 보낸 이유가 이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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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구 근절에는 실패했고, 조선이 건국됩니다. 초기 조선에서는 일본과 교역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일본에 수입할 물건이 없었거든요. 반면에 일본에서는 쌀수입이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번 요청도하고 왜변도 일으킵니다. 결국 세종때 계해약조로 교역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머리가 뛰어나셨던 이유가 계해약조로 일본에 수출한 미곡의 양을 충분하지 않게 고정한 것이죠. 필요한 양의 30%? 였던가? 정확한 비율은 기억이 안나네요. 하여튼 부족하게 주면서 조선 초기 일본은 조선에게 끌려다닙니다. 하지만 도요토미가 통일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죠. 전쟁이후 도쿠가와 바쿠후의 정권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일본과 조선은 친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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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나라 문물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 통신사가 오면 정부 백정 가릴것 없이 환영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중화사상과 조선의 소중화사상을 볼 수 있죠. 메이지 유신 성공이후 친조선세력들은 모두 숙청당하고 정한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에 운요호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 이후는... ㅎㅎ... 저희나라로서는 안타까운 역사죠. 지금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현 일본정부의 주도세력이 메이지유신 세력들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 정부는 반일본세력이 아닙니다. 일본을 반대했던 세력은 과거에 모두 숙청됬거든요.(이 이야기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요즘 무서운 세상이라) 지금의 정부는 따져서 보면 친일본세력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반일본적 성향이라 문제가 생기는 거죠. 도움이 되는 답변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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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때 백제하고 관계가 좋았죠. 당시 백제-가야-일본 3국 연합이였으니까요.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금관가야를 말하는 뜻이며, 당시 금관가야의 김해를 중심으로 3국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중국 남조의 문물과 가야의 철광석을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는 군사를 보내줬었습니다. 백제에서 왕자들을 일본으로 보내 교육시키는 경우도 많았죠. 많은 귀족들이나 왕족들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귀족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4세기 후반과 5세기의 고구려는 일본에게 두려운 나라였지만, 6세기 백제 고구려 일본 3국연합으로 친해진 나라입니다. 고구려의 불교 승려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 16.03.18 17: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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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 불교전파는 일본 왕권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 일본 왕권정부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였습니다.) 신라가 통일을 하게되면서 한반도와 일본은 사이가 나빠집니다. 장보고의 활약으로 친해지는가 싶었지만, 왕과 귀족들이 장보고를 숙청하면서 다시 사이가 나빠집니다. 당시 일본에서 장보고는 일본 정부에게 신같은 존재였습니다. 중국과 교역을 하기위한 필수적인 존재였죠. 하지만 이런 인물을 정부에서 죽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더이상 중국과 교역을 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16.03.18 17: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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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여 건국되면서 발해와 다시 사이가 좋아집니다. 하지만 발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서로 관계가 옛날 백제처럼 좋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본과의 교역내용의 거의 전무합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왜구 해적들 때문에 소탕하기위한 사절들이 몇번 간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도 왜구 해적들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세력이 미치지도 않아서 서로 힘들었죠. 이것때문에 공민왕은 일본 무로마치 막부에 초기에는 사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대마도에 사절을 보낸 이유가 이때문일 겁니다. | 16.03.18 17: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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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구 근절에는 실패했고, 조선이 건국됩니다. 초기 조선에서는 일본과 교역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일본에 수입할 물건이 없었거든요. 반면에 일본에서는 쌀수입이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번 요청도하고 왜변도 일으킵니다. 결국 세종때 계해약조로 교역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머리가 뛰어나셨던 이유가 계해약조로 일본에 수출한 미곡의 양을 충분하지 않게 고정한 것이죠. 필요한 양의 30%? 였던가? 정확한 비율은 기억이 안나네요. 하여튼 부족하게 주면서 조선 초기 일본은 조선에게 끌려다닙니다. 하지만 도요토미가 통일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지죠. 전쟁이후 도쿠가와 바쿠후의 정권이 만들어지면서 다시 일본과 조선은 친해집니다. | 16.03.18 17: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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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나라 문물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 통신사가 오면 정부 백정 가릴것 없이 환영했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중화사상과 조선의 소중화사상을 볼 수 있죠. 메이지 유신 성공이후 친조선세력들은 모두 숙청당하고 정한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에 운요호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 이후는... ㅎㅎ... 저희나라로서는 안타까운 역사죠. 지금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현 일본정부의 주도세력이 메이지유신 세력들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 정부는 반일본세력이 아닙니다. 일본을 반대했던 세력은 과거에 모두 숙청됬거든요.(이 이야기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요즘 무서운 세상이라) 지금의 정부는 따져서 보면 친일본세력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반일본적 성향이라 문제가 생기는 거죠. 도움이 되는 답변이였으면 좋겠습니다. | 16.03.18 18: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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