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입니다
펌 http://cafe.daum.net/hardron-story/
내용은 길지만 재밌습니다
부대살인사건 쓰신분이 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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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휴스턴...."
미항공우주국(NASA)의 선임 연구원 제임스 박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휴스턴.....휴스턴....."
발신지의 채널을 확인한 제임스 박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살람알라쿰즈드라스뜨 비체 짜오 안 나마스떼 싸왓디크랍 니하오 봉주르 규나이든안녕하세요 홋닥 하바리 가니 셀라마트 파기.."
"이런 세상에..."
제임스 박사는 급히 NASA 최고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저녁 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방성 긴급 안보회의가 열렸다.
"제임스 박사 상황을 설명해 보시오."
대통령은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제임스 박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침착히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8시간 전 나사의 통신채널로 신호가 하나 잡혔습니다. 통신채널을 확인해 본 결과 놀랍게도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호였습니다."
"뭐요? 보이저?"
"목성과 토성 탐사를 위해 만들어진 무인 탐사선으로 30년 전에 발사되었는데 지금은 임무가 종료되어 명왕성 궤도 밖을 지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이오?"
"보이저호는 임무가 종결되어 우주 미아가 된 후에도 혹시 모르는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에 대비하여 다양한 지구의 생명체와 문화를 나타내기 위한 소리와 이미지를 담은 12인치 크기의 금도금이 된 구리 원판을 장착하고 있으며, 지미 카터 전(前) 미국대통령과 쿠르트 발트하임 전(前)유엔사무총장의 메시지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8시간 전 누군가가 보이저 통신채널을 통해
음성을 보내 온 것입니다."
"보이저 호가 지적 생명체를 만났다는 말이오?"
대통령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판단됩니다. 녹음된 음성신호입니다. 들어보시죠"
제임스 박사는 프로젝터를 통해 음성신호를 재생하였다.
"살람알라쿰즈드라스뜨 비체 짜오 안 나마스떼 싸왓디크랍 ......"
동굴속의 울림이 섞인 듯한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누군가가 보이저호에 담긴 음성메세지를 반복해서 따라하는 듯 합니다."
이 때 나사국장이 긴급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통해 몇초간 통화를 한 후 나사국장의 표정은 상황인 긴박해져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 각하. 지금 나사로부터 긴급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국장"
"지금 보이저 채널로부터 새로운 메세지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나사에서 이곳으로 바로 전송하였습니다."
"어디 들어봅시다."
프로젝터를 통해 수신된 음성신호가 재생되기 시작하였다.
"치이이익........치이이익........지금 이것이 당신들 주 언어인 것 같다. ....당신들의 문명을 시험할 것이다...치이이..."
영어로 전송된 메세지는 완벽하진 않지만 회의장의 모든 책임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발음이었다.
모두가 두려움 섞인 놀라움에 빠진 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안보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잘 구분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소름끼치는 적막감을 깨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시험? 전쟁을 의미하는건가?"
"아직은 속단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대통령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제임스 박사에게 말을 건넸다.
"제임스 박사. 그들에게 우리의 메세지를 보낼 수 있소?"
"네. 보이저 통신채널을 통해 보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평화 메세지를 보냅시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고. 그리고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이저호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서 전파의 속력으로 약 6시간정도 소요됩니다.
답장을 받을 때까지 12시간이 필요합니다."
"알겠소. 제임스 박사.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평화 메세지를 보내고 기다려 봅시다.
그리고 지금의 모든 상황은 일급 기밀로 분류될 것이오. 각별히 주의하시오"
그러나 그 뒤로 한달이 넘도록 그들의 답장은 물론 아무런 추가 메세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구를 향해 직경 3km의 혜성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급 안보회의는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열렸다. 그 혜성은 커다란 비밀을 안고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사실입니까? 확신할 수 있어요?"
대통령의 질문에 나사국장은 미간을 잠시 찌푸리며 답을 했다.
"지금으로선..."
"정말로 지구로 돌진하고 있는 저 혜성이 그들이 보낸 것이란 말이오?"
"맞는 것 같습니다. 인위적인 천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혜성의 경우 타원운동을 하는데 반해 지금의 이 혜성은 2008년 6월 1일 2시 경지구의 공전궤도 위치를 향해 정확히
직선운동하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천체입니다."
대통령은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잠시 이마를 몇번 쓰다듬고서는 입을 열었다.
"피해규모는?"
"뉴욕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000km 떨어진 대서양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미 본토의 4의 1, 남미는 3분의 1,
유럽은 거의 대부분, 아프리카는 5분의 1정도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명피해는 약 3억명에서 5억명 사이로
예상되며, 충돌 후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수년간 15억명 이상이 추가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설명을 들은 대통령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탁자에 놓여있는 물 한컵을 들이켰다.
"후...미치겠구만...대처 방안은?"
"지금으로서는 10메가톤급 수소폭탄을 사용하여 폭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매우 촉박한 상태입니다. 다른 방법을 구상할 단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소. 지금 바로 대책반을 구성하고 충돌을 막아 봅시다. 그들에게 우리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여줘야 할 것 같소."
미국 단독으로 극비리에 '세이브어스(Save-Earth)'프로젝트가 추진되었고, 혜성을 향해 날아갈 우주선과 모든 승무원이
결정되었다.
미국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전세계가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미국은 단지 우주개발이란 명목 아래 우주선을
발사한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그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제임스 박사?"
수차례의 안보회의를 거치는 동안 대통령과 제임스 박사는 친분까지 쌓여지는 듯 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그들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리보다 우월한 지적 생명체임에는 확실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인위적으로 천체를 조작하고, 우리의 언어를 단 몇 분만에 해독하고, 우리의 통신장비를 쉽게 이해하는 것을 볼 때 적어도
500년 이상 앞선 문명의 생명체들로 보입니다."
"그들과 우리가 싸운다면 어떻겠소?"
"지금으로서는 역부족입니다. 그들이 보낸 혜성 하나만으로 인류는 멸망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정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은 세수하듯이 맨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르더니 뭔가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런데 대통령 각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무엇이오?"
"작금의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세계가 대공황에 빠질것 아니오?"
"어차피 각 국의 천문대에서 지금의 혜성을 발견하기는 시간문제입니다.
그 때 가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위상도 큰 손상을 입을 것이구요.
게다가 우리의 수소폭탄으로 혜성을 완전하게 파괴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 말에 대통령은 갑자기 제임스 박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임스 박사.... 당신이 지금 미국인임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적어도 미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급기밀 사항을 듣고 있지 않소? 나중에 얘기합시다."
집무실을 나오는 제임스 박사는 대통령이 무엇인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다.
2008년 2월 3일. 3기의 10메가톤급 수소폭탄을 싣고 세이브어스호가 발사되었다.
공식적으로는 화성 탐사를 위한 유인탐사선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많은 국가들이 탐사선의 목적을 곧 알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돌연한 미국의 유인 화성 탐사계획이라니...누가 봐도 다른 계획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세이브어스호는 최고 속력 30km/s에 도달할 수 있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탐사선 중에 가장 빠른 탐사선이었다.
승무원의 안전이 약간의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앞으로 약 4개월 뒤 지구에 충돌한 혜성을 생각한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야만 했다.
세이브어스호는 지구 충돌 20일전에 폭파될 예정이다.
중대한 위험에 휩싸여 있는 지구는 서로의 힘을 모으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간의 다툼으로 인해 더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중동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국지적 분쟁이 발생하였고, 정규군과 반군의 치열한 교전이 끊이질 않았다. 중동의 반정부 세력의
뒤에 미국방성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중동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행보를 미중앙정보국 CIA가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거의 적대적인 수준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변종 단백질인 프리온이 나타나 중국 전역에 인간광우병이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북미산 쇠고기 때문이고,
미 정부에서 이 사실을 함구했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중국내 반미 정서는 극에 치달았다. 연일 반미시위가 끊이질 않았고 미국계
상점이나 기업 건물이 시민들의 폭력시위로 인해 큰 손상을 입기도 했다.
세이브어스호가 발사된 두 달 후
"휴스턴...휴스턴...여기는 세이브어스호다."
제임스 박사는 세이브어스호로부터 지속적인 정보교환을 하고 있었다.
"말하라. 세이브어스"
"혜성의 위치가 우리의 레이더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혜성의 정확한 규모와 속도를 알 수 있는가?"
"직경이 3240미터 정도 되며, 현재 22.5km/s의 속력으로 진행중이다.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려면 며칠이 더 지나야할 것 같다."
"알았다. 세이브어스. 현재의 항속을 유지하고 추가적인 연료소비는 하지 말라."
"알았다. 휴스턴"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제임스박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미 일주일 전 혜성의 출현이 전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은 미국의 독단적인 결정에 맹렬한
비난성명을 쏟아냈다. 그리고 독자적인 방어시스템을 수립하는데 열을 올렸다.
경제력과 우주항공 기술에서 뒤쳐지는 일부 국가에서는 무정부 상태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전 세계 언론은 연일 세이브어스호의 행보를 타진하기에 바빴고, 세상은 거의 전시상태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보이저호에서 수신된 외계생명체로부터의 메세지는 일급기밀로 부쳐졌다.
계속 통제실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제임스 박사에게 같은 선임 연구원이며 절친한 친구인 브라이언 박사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봐. 제임스. 나와 잠깐 얘기 좀 하세."
"뭔가? 급한 일인가?"
"잠깐 내 연구실로 가세."
연구실에 도착한 브라이언은 문을 굳게 잠그고, 연신 창밖을 살피더니 창문의 블라인드 커튼을 내렸다.
그리고는 숨죽인 목소리로 빠르게 이야기 하였다.
"제임스. 이건 뭐가 이상해."
"뭐가?"
"이걸 보라구. 1977년 8월 22일에 발사된 보이저 1호와 9월 5일에 발사된 보이저 2호의 최근 통신기록이네."
브라이언 박사는 몇 장의 용지를 제임스에게 건넸다.
"이걸 왜 확인하려고 하는거지?"
"외계 생명체가 보이저 1호의 통신채널로 우리에게 메세지를 보낸 날 나는 혹시나 해서 보이저 2호의 통신채널을 확인해 보았네.
역시나 보이저 2호에도 같은 신호가 접수되었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두 탐사선은 통신채널을 공유하지 않나?"
"자료를 보라구. 우리가 수신한 시각과 보이저 2호가 수신한 시각이 뒤바뀌어 있어.
보이저 1호에서 전파를 쏘았다면 우리는 수신하는데 6시간이 소요되지만, 보이저 2호는 단 몇 십분이면 수신할 수 있는거잖아!!
그런데 수신시각이 반대로 되어 있어."
"뭐라구?"
제임스 박사는 급히 서류 속의 데이터를 훑어 보았다.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가 받은 메세지는 보이저 1호에서 발사된게 아냐. 바로 지구와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발사된 거라구!!!"
"지구와 아주 가까운 곳!! 이런 세상에!!! 그들은 지금 달에 있어!!"
"맞아. 제임스 그들은 달에 있어!!!"
"미치겠군. 어떻게 이럴수가?"
"그런데 더 이상한게 있어. 메세지 수신 횟수를 잘 봐.
보이저호의 통신채널을 통해 이미 6개월 전에 3차례에 걸쳐 지구로 송신되었어.
음성신호가 아닌 문자신호로 말이야. 당시 통신 책임자인 존슨 박사가 얼마 뒤 실종된 것 기억하나? 이건 뭔가 암시하고 있어.
정부가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제임스 박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수가!! 모두 미친 것 아냐? 이건 음모야!! 다들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거지?""
"제임스. 이것도 한번 보게"
제임스 박사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브라이언 박사는 기밀문서로 분류된 서류 하나를 제임스에게 건넸다.
"1962년 미 국방성 자료야."
"자네가 이걸 어떻게?"
"이번 일이 여러모로 수상쩍어 지인으로부터 얻은 걸세. 일급기밀은 아니니까 들통나도 큰 처벌은 받지 않아.
1961년 구 소련에서 58메가톤급 수소폭탄 '짜르'의 핵실험에 대한 자료야. 58메가톤급이면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당시 지구를 위협하는 천체에 대항하여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기록한 내용도 있지. 그런데 잘 보라구. 직경 1km의
혜성조차 전부 파괴할 수없다고 나와 있지. 직경 3km이상은 파괴의 의미가 없고 궤도 수정에 약간의 도움을 준다고 나와 있어."
제임스 박사는 자신의 의심스러운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듯 했다.
"제임스. 세이브어스호에 싣고 간 3기의 수소폭탄은 겨우 10메가톤급이라네. 과연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혜성 파괴계획에 왜 아무도 나사 연구원들이 선임되지 않았지? 전직 나사 출신의 국방부 간부들과 국무성 간부들이
비밀리에 결정하지 않았나?"
그 순간 제임스 박사는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그랬어!!!"
"뭔가 제임스?"
"혜성 폭파 방법 말이야. 혜성의 진행방향의 전면부에 구멍을 뚫고 터뜨리기로 한 것 말이야."
"그게 어째서?"
제임스 박사는 브라이언 박사의 말을 듣고는 있는지 없는지 계속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서 대통령이 미국인임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했어!!!"
"제임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브라이언!! 오늘 저녁 9시에 우리가 자주 만나던 그 식당 있지 거기서 만나지? 나는 지금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어!!"
제임스 박사는 서둘러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로 들어서자마자 제임스박사는 천체 시뮬레이션 전용 컴퓨터를 부팅하였다.
그리고 급하게 여기저기 서류를 모으더니 컴퓨터에 이것 저것 데이터를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마지막 자료를 입력한 제임스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엔터키를 눌렀다.
눈 앞의 모니터는 천천히 제임스 박사로부터 입력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에 나타난 결과물을 보게 된 제임스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맙소사.....다들 미쳤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식당에 들어선 제임스와 브라이언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을 만한 구석진 자리에서 숨죽인 대화를 나누었다.
"목표는 중국 본토야."
"뭐? 뭐라구?"
제임스 박사의 말에 브라이언은 놀라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 몇 번을 다시 시뮬레이션 해 봤는데 결과는 같았어. 혜성을 폭파하려는 게 아니야.
혜성의 전면부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려 속도를 조금 늦추는거야. 그러면 지구 자전에 의해 대서양에 충돌할 혜성이 뒤늦게
도착하여 중국본토에 떨어지게 되는거야."
제임스 박사의 충격적인 발언에 브라이언 박사는 주문한 스테이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임스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정부는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하려는거야. 사스, 인간광우병, 국제관계..."
"이봐 제임스. 혜성이 육지에 떨어지면 피해는 더 심각해질 수 있어. 미국은 그나마 덜 하겠지만 수십억명의 아시아인들과
유럽인들이 죽을수도 있어. 잔류 피해는 이루 말할 수도 없고"
"그렇지. 그래서 미 정부는 지구 반대편에 혜성을 떨어뜨리고 싶은거야.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겠다는 얘기지."
"제임스. 단기간에 이렇게 치밀한 계획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이미 정부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저 달 뒤의 지적 생명체로부터 수개월전에 경고성 메세지를
받았을거야."
"후..그럼 우리는 정부 수뇌부들의 쇼에 놀아난거란 말이군."
브라이언 박사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브라이언. 그런데 이 사태를 해결할 한가지 묘안을 찾았어."
"뭔데?"
"천체 시뮬레이션을 더 해보고 대통령께 보고할 생각인데 잘 들어봐. 저 혜성이 떨어지는 시각이 6월 1일 오후 2시야.
그런데 충돌 3일 전에 달이 혜성의 진로 근처로 지나게 돼. 무슨 말인지 이해하나?"
"그럼 달에 충돌시킨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그런데 시간이 3일이나 차이가 난다는게 문제야. 3일의 차이를 줄이려면 혜성의 속도를 증가시켜서 달이 혜성의 진로를 지나치기 전에 충돌시켜야 한다구."
"음...혜성의 후면부에서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거군."
"그렇지. 2개 정도만 터뜨려도 충분한 속도를 얻을 수 있어."
"그런데 제임스. 만일 실패한다면 지구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알고 있나?"
"우리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어. 공멸이냐. 공존이냐?"
이 때 검은 정장차림의 두 남자가 식당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제임스와 브라이언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제임스?..브라이언?"
"네. 누구시죠?"
그들은 지갑을 펼치며 뭔가 신분증을 꺼내 들어보였다.
"우리는 정부 보안국 요원입니다. 당신들을 긴급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순순히 저희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젠장!!!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천천히 식당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통령을 만나고 싶소."
식당을 빠져나온 제임스 박사는 두 요원들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제임스의 부탁은 두 요원에겐 관심 밖의 사안인 것 같았다.
식당으로부터 멀어졌음을 확인한 두 요원은 두 사람의 뒤통수에 뭔지 모를 주사총을 쏘았다.
제임스와 브라이언은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며 커다란 검은 벤차량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갔다.
얼마동안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정신을 차리자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자신들이 낯선 밀실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소지품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갑, 시계, 반지, 목걸이....심지어 속옷부터 겉옷까지 모든 옷가지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제임스. 우리 이대로 죽는건가?"
브라이언 박사가 얼얼한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글쎄, 보안국에서 우리를 입막음하려고 하는 것 같아."
제임스 박사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대답할 수 있었다.
밀실에는 아무런 집기류도 없이 3평 정도의 공간과 화장실 그리고 문만 있었다.
두 사람은 문을 열어보려고 했으나 거대한 바위처럼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브라이언. 이대로 가면 인류는 전멸이야. 대통령의 생각은 잘못되었어. 어차피 그 외계인들은 호전적이야.
결과가 어떻든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정복 당할거야."
"그런데 제임스. 그 외계인들은 왜 달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우리를 테스트하는걸까? 막강한 화력으로 우리를 제압할 수도
있을텐데."
"그러게.나도 그게 의문이야. 혜성의 운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을 텐데.
우리를 두려워하는 뭔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게 뭘까?"
이 때 어딘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음성이 들려왔다.
"제임스, 브라이언 박사 당신들은 당분간 이곳에 안전하게 머물것이오.
모든 일이 끝나면 당신들은 자유를 얻을 것이오. 그러니 우리의 지시에 잘 따라주길 바라오."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시오!! 우리를 구원할 더 좋은 방법이 있소!!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시오!!"
제임스 박사는 애원하듯 소리쳤다.
"우리는 지시만 따를 뿐입니다. 당신들의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 없소."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당신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요!! 제발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시오!!"
"휴스턴...휴스턴 혜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4월 25일 드디어 세이브어스호의 작전 구역에 혜성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휴스턴..휴스턴..제 2단계 작전의 허가를 요청한다."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가 없는 가운데 나사국장의 직접적인 통제로 세이브어스호의 작전이 수행되었다.
"세이브어스. 제 2단계 작전 수행을 허가한다.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 오로지 세이브어스호와 혜성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이브어스호는 서서히 혜성의 전면부를 향해 조금씩 진행하였다.
밤낮의 변화를 알 수가 없으니 시간 개념이 깨진 것 같았다.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지금이 몇 시인지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음식물이 제공되는 굳게 닫힌 문 아래 작은 틈으로 사람 손을 보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사람도 보지도 접촉하지 못하였다.
이 때 평생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밀실의 문이 갑자기 철커덕 열였다.
문이 열리자 검은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그들을 불렀다.
"제임스. 브라이언 박사. 대통령 면담이오."
길게 자란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결을 어루만지며 제임스 박사는 한마디 신음처럼 내뱉았다.
"이제 다 끝난건가?"
눈을 가린 채 어디론가 차량으로 이동하는 두 남자는 내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야가 열렸을 때 눈부심속에서도 그들은 또다시 낯선 장소에 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대통령이 앉아 있음을 눈부심이 사라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자네들 생각이 뭔가? 그 다른 방법이란게"
그제서야 제임스 박사는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모든 상황이 끝난 건 아니군요. 감사합니다. 각하!!"
"자네에 대한 나의 마지막 배려네."
브라이언 박사는 대통령이 바로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이 믿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각하!! 세이브어스호의 작전을 변경해 주십시오. 혜성을 달에 충돌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반응은 의외였다.
"훗.. 겨우 그 말을 하려고 했던건가?"
"아니 각하!! 인류의 전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네 생각은 이미 다 계산되었던 것이네."
대통령의 말에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뭐..뭐라구요? 알고 계셨다구요?"
"자네들이 외계인들로부터 받은 메세지는 이미 수 개월 전부터 국방성과 보안국에서 알았던 사실이라네."
"그럼 혜성의 사실만 알리면 되지, 왜 이제와서 외계인의 존재를 알린겁니까?"
"다름아닌 그 혜성 때문이지. 혜성이 발견되고 나서 혜성의 운동궤도가 인위적이란 사실을 안다면 누군들 의심하지 않겠나?
여러 통신채널을 모두 열고 전 세계 국가에서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찾으려 하지 않겠는가? 나사에게는 조작된 신호로 미리 알리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지. 우리는 수개월전부터 그들로부터 메세지를 받았지. 지구를 위협하는 메세지....사스, 인간광우병, 지금의 혜성. 모두 그들이 지구에 보내는 선물이야. 우리도 어쩔 수 없었지."
"그런데 왜 혜성은 막을 수 있는데 그러십니까?"
"진로를 달로 바꾸라구? 달에 충돌시키라구? 그들은 지금 달 뒤에 있어. 그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지구는 어떻게 되겠나? 그들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3km가 넘는 혜성의 운동을 조작하는 놈들일세.
전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자네 입으로도 말하지 않았는가 적어도 우리보다 500년은 앞선 문명 같다고."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무고한 수십억명의 목숨을 죽음으로 몰 수 없습니다!!"
"전쟁을 한다면 어차피 우리는 그들에게 정복당할거야. 인류의 씨가 마를 수 있다구!!"
"그들은 적입니다!! 그들은 결코 혜성이 그대로 지구로 충돌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의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겁니다!! 각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이에 대통령은 격분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뭐야? 자네 나한테 훈계하는건가? 모든 사안의 결정권자는 바로 나야!!"
제임스 박사는 이에 지지않고 더 큰 목소리로 받아쳤다.
"네!! 훈계입니다!! 당신은 결정권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인류 문명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악입니다.
우리의 적은 지구 밖의 그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입니다!!
절대로 당신 손으로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갑자기 대통령은 제임스 박사의 멱살을 쥐며 숨을 헐 거칠게 내 쉬었다.
"감히 한낱 연구원 주제에 미합중국 대통령을 모독하다니.."
"각하. 진정 우리가 누구와 손잡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십시오. 그들입니까? 아니면 우리 인간입니까?"
대통령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제임스 박사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브라이언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제임스 박사는 이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각하, 그들이 지구에 혜성을 충돌시킨 후 전쟁을 개시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피해는 피해대로 입고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왜 혜성만이라도 멈추게 할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대통령은 쥐었던 멱살을 풀고 두 손을 탁자에 올렸다.
그리고 긴 한숨과 함께 대통령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들로부터 또 다른 메세지를 받았네."
"무슨 메세지 말입니까?"
"혜성을 지구에 충돌시키라는 메세지.....최소한 미대륙만큼은 살리고 싶었네."
4월 29일 세이브어스호가 혜성 전면부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휴스턴.. 휴스턴..혜성 전면부에 착륙을 시도할 것이다. 좌표 확인 바란다."
"세이브어스. 좌표 확인하였다. 현 지점에 착륙하라."
"휴스턴...휴스턴...제 3단계 작전의 허가를 요청한다."
"세이브어스. 제 3단계 작전을 허가한다."
작전 명령이 떨어지자 혜성 표면에 접근한 세이브어스호는 줄이 연결된 긴 네개의 작살을 혜성 표면에 쏘아 고정시킨 후
서서히 끌어당겨 착륙을 시도하였다.
표면 중력이 없는 관계로 세이브어스호는 지구와 같은 착륙이 불가능하였다.
동체가 표면에 거의 닿을 쯤 동체 아래부분에서 굴착기가 나와 표면에 구멍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제임스 박사 대통령 전화요."
처음 갇혔던 밀실에서 연락을 받은 제임스 박사는 보안국 직원이 건내 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수화기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임스 박사. 자네 계획이 실패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지 알고 있나?""
대통령의 말에 제임스는 알 수없는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자네는 죽음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 같군. 죽더라도 어떻게 죽느냐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아. "
"...."
대통령은 잠시 입을 다문 후,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국방장관은 당신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소. 국무장관이 당신의 의견을 편치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소.
자네가 잘 설득해 주시오."
"각하!"
"후...이것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될 수도 있는데..."
"아닙니다. 각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이 될 것입니다."
나사의 세이브어스 통제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통제실로 돌아온 제임스와 브라이언 박사의 모습을 본 나사국장은 조용히 송수신기를 그들에게 건네며 말을 하였다.
"미안하네. 국장으로서 자네들을 보호해야 했지만 국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네."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국장을 쳐다보며 송수신기를 받아 들었다.
"제임스, 브라이언. 대통령의 마음을 바꿔줘서 고맙네. 나도 자네들 생각과 같다네."
국장의 말에 제임스 박사는 어렵게 대꾸를 하였다.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송수신기를 착용한 제임스 박사는 바로 세이브어스 통제에 들어갔다.
"세이브어스 일급보안채널을 작동한다.!!"
직원들이 세팅을 마치자 제임스는 세이브어스호를 불렀다.
"세이브어스. 세이브어스. 여기는 휴스턴이다. 응답하라."
"휴스턴. 여기는 세이브어스호다."
"세이브어스. 지금부터 일급보안채널을 통해 교신한다. 통신채널을 보안채널로 전환하라."
"알았다. 휴스턴. 보안채널을 열겠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휴스턴."
"작전 변경명령이 하달되었다. 지금부터 보안채널이 아닌 다른 모든 채널의 수신은 거부하라."
"알았다. 휴스턴. 명령 하달을 요청한다."
통신 채널이 전환되자 긴급명령이 하달되었다.
"세이브어스. 지금의 모든 임무를 취소하고 현 지점에서 벗어나 혜성의 후면부에 착륙하라.
수소폭탄은 후면부에서 2개를 터뜨릴 것이다. 폭파 시점은 원래 계획에서 이틀 늦어지는 지구시간 5월13일 13시이다."
"알았다. 휴스턴. 곧 명령을 수행하겠다."
통신이 끝나자 세이브어스호의 부선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선장님. 우리가 처음 접했던 시나리오 아닙니까? 혜성을 달에 충돌시키는 것."
"맞네. 무슨 이유인지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것 같네."
"선장님. 우리는 지금의 계획하에 모든 장비를 구성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틀이나 계획에 변경이 생기면 지구로 돌아갈 연료조차 부족할 지 모릅니다."
"오히려 잘 된 것 아닌가? 우리 손으로 수십억명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지만."
"대원들을 집합시켜주게."
"네."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선장을 포함한 6명의 대원들이 선장실로 모였다.
"대원들! 상부에서 화끈한 명령이 떨어졌다. 수소폭탄은 혜성의 전면부가 아닌 후면부에서 2개를 터뜨릴 것이다."
이 말에 잠시 대원들이 술렁거렸다.
"우리는 혜성을 가속시켜 달에 충돌시킬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 손으로 수십억명을 죽 무고한 생명을 죽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도 좋다."
이에 대원들은 작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우리는 두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첫째 우리의 장비는 혜성 전면부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린다는 계획하에 갖추어진 것이다.
따라서 변경된 임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조금의 실수라도 하여 혜성이 달을
빗겨간다면 엄청나게 가속된 혜성이 지구를 종말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는 한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된다.
둘째 지금의 작업을 중단하고 세이브어스호가 혜성의 후면으로 가서 안착하기 위해서 약 이틀 정도가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추가적인 연료소비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임무가 종료되더라도 지구에 귀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대원들. 이 점에 대해 어떠한 생각이 있는가?"
선장의 말에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러자 대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대원이 입을 열었다.
"돌아갈 집이 없다면 우리는 어차피 죽은 목숨입니다. 제 가족들은 집에 있습니다.
저는 가족들을 위해 기꺼히 목숨을 버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수십억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말에 다른 대원들도 조용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대원들!!. 난 자네들이 정말로 자랑스럽다."
선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애써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지금부터 모든 작업을 취소하고 장비를 회수한다!! 내 명령이 없는 한 추진기의 작동을 금하고 연료소비를 최소화한다!!.
이제 우리가 죽음으로 몰아가려했던 지구에 사는 인류를 위해 싸운다!!"
미국은 유엔에 각 국의 대표 소집을 요청하였고 이에 각 국가 원수들의 외계인과 혜성의 위협에 대한 대책이 논의 되었다.
미국의 무책임한 독선적인 행동이 지탄을 받긴 하였지만 지금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다자 간 비밀회담을
통해 외계인의 존재를 밝혔기 때문이다. 각국 대표는 당분간 외계인의 존재는 모두 일급국가기밀로 하며, 혜성의 위협에 대한
사실만 언론에 발표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의 제 7함대와 러시아 지상군의 행보가 평소가 다름을 언론은 알고 있었지만 단지 혜성의 위협으로부터 발생되는 혼란을 막기 위한 행동일 것이라고만 추측하였다.
"휴스턴. 여기는 세이브어스호다. 혜성의 후면부에 착륙을 시도할 것이다. 후면부에 있는 관계로 24시간 동안 통신이 두절될 것
같다."
"알았다. 세이브어스. 건투를 빈다."
몇 분 뒤 나사로 전송되는 보안채널의 신호가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통신은 완전 두절되었다.
나사 통제실에서는 죽음보다도 긴 시간이 적막속에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제임스.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브라이언 박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제임스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제임스 박사는 팔짱을 끼고 통제실 모니터만 응시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스로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런데 제임스. 잠깐 이 사진 좀 보게."
브라이언 박사는 몇 장의 사진 자료를 제임스 박사에게 내 밀었다.
"호주 천문대에서 수개월동안 적외선으로 찍은 달의 표면 사진이라네. 태양의 빛을 받는 부분이 밝게 보이긴 하는데 온도가 낮은 빛을 받지 않는 부분을 좀 보게"
그러나 제임스 박사는 아무리 봐도 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뭐가 이상한 거라도 있나?"
"자세히 보라구. 태양 빛을 받는 뒤면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적외선으로는 열작용이 있는 물체는 찍힌다구.
잘 봐. 아주 깨알같은 작은 붉은 점이 보이지 않나?"
"응. 그래 정말 깨알같은 작은 붉은 점이 있네..혹시 이게 그 외계 생명체 함선인가?"
놀라움에 제임스 박사는 브라이언 박사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맞아. 그런것 같아. 자 여기 확대된 사진이네."
"오 이런 생각보다 함선이 큰 것 같군. 상부에 보고했나?"
"이미 상부에서도 알고 있더군. 계산적으로는 크기가 1km가 넘는 거대 함선인 것 같아. 그런데 자꾸 의문이 생겨."
"뭐가 말인가?"
"조용히 지구의 정보를 얻기 위해 어두운 곳에 있다고 쳐도 한번도 그들은 달의 밝은 면에 있질 않았어.
생각해 보게. 전 세계 어떤 천문대나 아마추어 천문계에서도 그들이 육안으로 관찰되었다는 보고가 없어
심지어 보름달이 떠 오르는 날에도 마찬가지야.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
"옮겨 다닌다는 거군. 태양을 피해서."
"왜 피해 다니는걸까? 빛을 두려워 하나? 어차피 지구에 와도 그들은 빛에 노출될텐데."
제임스 박사는 여러가지 의문점을 하나의 열쇠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은 듯 계속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때 갑자기 세이브어스호의 보안채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세이브어스호와 통신이 두절 된지 한 시간 반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휴스턴. 휴스턴. 여기는 세이브어스호다."
놀란 제임스 박사는 급히 송수신기를 집어들었다.
"무슨 일인가? 세이브어스."
"문제가 발생하였다. 혜성 후면부에 큰 구멍이 있다. 폭탄을 터뜨리는데 어려움이 있다.
폭탄을 터뜨릴 경우 혜성에 균열이 생겨 우리가 예상한 궤도로 혜성이 진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젠장."
제임스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격앙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세이브어스. 다른 방법이 없는가?"
"생각한 방법은 있다. 구멍 테두리 양끝에 수소폭탄 2개를 설치하고 동시에 터뜨리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자체 시뮬레이션이 어렵다. 터뜨려야 할 시간을 알 수 없다. 휴스턴의 도움을 요청한다. 터뜨릴 시간을 가르쳐 달라."
"알았다. 세이브어스. 혜성의 후면 사진을 전송하고 수신 대기하라!"
제임스 박사는 통제실을 벗어나 메인 컴퓨터실로 향했다.
세이브어스호에서 송신된 자료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얼마 후 제임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세이브어스호에게 송신하였다.
휴스턴으로부터 전송된 자료를 받아 본 선장은 상황이 아주 어렵게 되었음을 직감하였다.
"이런....폭파시간이 겨우 2시간 늦춰지다니"
긴 탄식을 내뱉는 선장은 송수신기를 집어 들었다.
"휴스턴. 폭탄을 혜성 양쪽을 오가며 설치해야 한다. 설치할 시간이 부족하다.설치하더라도 탈출시간이 부족하다."
"세이브어스.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잔여 연료를 모두 소비하는 한이 있더라도 설치하고 즉각 탈출하라. 구조선을 보내겠다."
선장은 잠시 응답을 멈춘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알았다. 휴스턴. 최선을 다하겠다."
"건투를 빈다. 세이브어스."
교신이 끝난 후 제임스 박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세이브어스와 다시 교신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 교신의 내용은 마치 친구와 사적인 전화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선장. 당신들은 반드시 우리가 구출한다. 반드시 지구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선장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통제실의 스피커를 통해 울리기 시작했다.
"고맙네. 제임스 박사. 우리도 반드시 돌아가길 원한다. 최선을 다하겠다."
다시 통신채널의 신호는 약해지기 시작했고 제임스 박사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브라이언. 상부에 구조선 요청을 하세."
몇 시간 뒤 구조선 발사가 허가되었고 장비 구축에 들어갔다.
통제실은 매 순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세이브어스호의 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장의 서류를 집어드는 소리가 들릴만큼 통제실은 적막감과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길고 긴 24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세이브어스호의 채널이 열렸다.
"휴스턴. 모든 설치가 끝나고 탈출 중이다!!"
그러자 통제실은 환호성이 넘쳐 흘렀다.
제임스 박사 또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휴스턴. 전력으로 탈출 중이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세이브어스. 잔여 연료를 모두 소비하라!! 최대 속도로 탈출하라!!"
"휴스턴 전속력으로 진행중이다!! 곧 폭파시간이다!! 지구시각 15:00 정각!!"
환호성으로 뒤덮혔던 통제실은 갑자기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휴스턴. 폭파시간이다!!. 휴스턴..치이익.....섬광이 보인다...치이익...치이이이익...."
"세이브어스!! 세이브어스!!"
"치이이이이익..........."
"응답하라!! 세이브어스!! 응답하라!! 세이브어스!!"
"치이이이익........"
몇 번을 불렀지만 세이브어스로부터의 수심음은 오직 잡음 뿐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박사는 멈추지 않고 세이브어스와 교신을 시도하였다.
"응답하라. 제발 응답하라!!"
지켜보던 브라이언 박사가 제임스를 진정시켰다.
"폭발의 영향으로 잠시 교신이 두절되었을거야. 몇 분만 기다려보자구."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임스 박사는 계속 교신을 시도하였다.
"들리는가? 세이브어스.."
"치이이이이익....."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잡음은 멈추지 않았다.
"세이브어스. 응답하라!! 들리는가? 제발 좀 응답하라!!"
제임스 박사는 송수신기를 움켜쥔 채 울부짓 듯 세이브어스호를 불렀다.
"치이이이이익......."
잡음은 20분이 넘도록 계속 되었다.
오직 수신기 잡음만이 통제실에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신음마저 서서히 작아지고 있었다.
제임스 박사는 탁자를 손으로 짚고 서서 고개를 떨군 채 한 마디 신음소리처럼 말을 내뱉았다.
"미안하네. 선장."
폭발이 있은 후 몇 십분 뒤 달 뒷면에서 수천대의 비행선이 벌집에서 벌들이 쏟아져 나오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물이 뿜어지듯 쏟아져 나왔지만 항로를 수정한 비행선의 방향은 모두 지구를 향하고 있었다.
수시간 뒤 지구는 온갖 사이렌 소리로 뒤덮였다.
곧 핵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지구는 다가오는 극한의 두려움에 휩싸인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르는 시민들은 대피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숨을곳을 찾을 뿐 다른 어떠한 방어적 행동도 취하지 못하였다.
유엔 사무총장의 긴급 발표가 있은 뒤에야 시민들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방송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외계인의 침공 소식을 생중계로 내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CNN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수천대의 외계 생명체 비행선이 지구로부터 약 10만킬로미터까지 접근하였다고 합니다.
조금 전 모든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절대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국방성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한편 외계인의 존재 사실을 뒤 늦게야 발표한 유엔과 각 국가의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한 곳에서는 외계인을 숭배하는 단체의 사람들이 외계인을 환영하는 거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각 국의 모든 군사력은 외계인의 공격에 대한 대비체제로 바뀌어 있으며, 수십만기가 넘는 지대공 미사일들이
일급 전시체제에 맞추어 발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 국의 공군 전투기 또한 모든 출격준비를 마치고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조금 전 모든 시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절대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국방성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안전을 위하여 시민 여러분은 즉각 국방성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제임스 박사는 통제실 모니터에 찍힌 수천개의 점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세이브어스와의 통신채널은 24시간 계속 열어놓고 송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만 한가닥의 희망이라도 찾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제2 통제실. 구조선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는가?"
"지금 연료 주입 중이다. 12시간 뒤 완료된 후 카운트에 들어갈 것이다."
옆에 지켜보던 브라이언 박사는 뭐가 먼저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이봐 제임스. 지금 구조선에 신경 쓸 때인가? 아니 정말로 구조선을 보낼 작정인가?"
"상부의 허가를 받지 않았나?"
"그들의 생존여부는 지금에 와서 정말 무의미하다구. 또 구조선마저 외계인들에게 격추될 수도 있어."
제임스는 두 손을 탁자에 짚고 긴 한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숙였다.
"우린 군인이 아니네. 전투는 군인들이 할거야.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네. 브라이언"
"그렇긴 하지만 ..제임스. 이젠 우리의 임무가 무의미해지지 않았나?. 당장 이 통제실조차 없어질 판인데."
"세이브어스 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키려하지 않았나? 우리도 끝까지 이곳에 남아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나?"
브라이언 박사는 더 이상의 조언은 제임스 박사에게 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수천대의 비행선이 속력을 줄이며 지구 가까이 근접하기 시작하였다.
비행선은 둥근 원반 모양으로 앞 부분은 약간 파여있고 사슴벌레 집게처럼 양쪽은 갈고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갈고리 끝 부분은 계속 전기 방전이 일어나는 것처럼 지글거렸고 뭔가를 계속 충전하는 듯 점점 청백색의 광채가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엄청난 빛과 함께 광선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공연장의 레이저 쇼 같이 사방에서 광선빔이 이리저리 날아 다녔다.
그들의 1차 목표는 지구 상공의 모든 위성인 것 같았다. 엄청난 에너지의 광선빔을 맞은 인공위성들은 초고온의 열폭탄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증발하여 사라져버렸다.
엄청난 기동성으로 수천대의 비행선들은 불과 몇 분만에 지구 상공의 거의 모든 인공위성들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다.
지상의 모든 위성통신은 마비되어 버렸으며, 지상통신만이 지구인들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 되어 버렸다.
대기권에 진입한 비행선은 다신 광선빔을 충전하더니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수직 하강하고 있었다.
대기권에서의 마찰열은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들의 비행선이 대류권에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수만발의 지대공 미사일이 하늘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미사일의 연소가스가 만든 수만 가닥의 하얀 선들이 허공에 그어지며 지대공 미사일이 이리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엄청난 화력도 잠시 뿐이었다.
마치 자로 잰 것처럼 그들의 비행선은 정확히 한기 한기의 지대공 미사일을 광선빔으로 증발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기동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대공 미사일은 비행선을 따라가기 역부족이었고 비행선의 순간적인 급선회 능력은
미사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사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지상에서 솟구쳤지만 어떤 것은 발사 직 후 증발하기도 하였다.
"CNN 긴급 속보입니다!! 이 방송은 지상통신 채널입니다!! 화면이 고르지 않다면 TV수신 안테나를
세워 주십시오!! 모든 위성통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지금 외계인들이 엄청난 화력으로 지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화면에 보시는 것처럼 수만기의 지대공미사일이 외계인의 공격으로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수십만대의 전투기들이 출동하였으나 거의 모두 격추되고 있습니다!!
곧 주요 건물에 대한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곧 주요 건물에 대한 공격...치이이..익.."
방송을 듣던 시민들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미사일들을 보면서 극한의 공포와 함께 저항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버렸다.
정신적인 공황에 빠져버린 일부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날뛰기 사작했고 여기저기 방화를 하며 닥치는대로 보이는 것을
부셔버렸다.
1시간 정도 지나자 그들의 공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우연히 강력한 미사일을 맞은 몇 기의 비행선만 추락한 것을 빼고
수천기의 비행선들은 아직 상공을 지배하며 지구인들의 모든 저항을 막아내었다.
갑자기 공격을 멈춘 비행선들이 수십킬로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정지상태로 상공에 머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상의 모든 채널이 어떤 광대한 대역폭의 주파수에 인위적으로 맞추어졌다.
그리고 전세계 모든 TV에 낯선 생명체의 모습이 비춰졌다.
사람 형상에 하얀색 피부, 모발하나 없는 커다란 머리에 지나칠정도로 야윈 몸. 얼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검은 눈,
거의 퇴화된 듯한 코와 입.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의 그 괴생명체는 거의 열지도 않는 입을 통해 말을 하고 있었다.
"미개한 지구인들이여. 미개한 문명이여. 저항하지 말라. 저항은 곧 죽음이다.
우리에게 복종하라. 채널은 열려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군사정보를 우리에게 송신하라. 저항은 곧 죽음이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군사정보를 우리에게 송신하라.
다시 한번 말한다. 저항은 곧 죽음이다."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수천기의 비행선이 대열을 갖추더니 서서히 하늘끝으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극도의 공황상태에 빠진 지구는 깊은 적막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죽음보다 무서운 적막감에 휩싸인 지하 통제실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제임스는 신음하 듯 한마디를 내 뱉았다.
"로스웰...."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제임스는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듯 브라이언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브라이언!! 로스웰 사건에 대한 국방성 일급비밀문건을 열람할 수 있나?"
"로스웰? 로스웰의 비행선 추락 사건?"
"그래. 1947년 7월 4일경, 뉴 멕시코의 로스웰 지방 근처에서 추락한 비행체의 잔해와 함께 4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지.
군 사령부는 모든 사실을 비밀에 부쳤지만 여러 언론의 집요한 추적과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외계인의 존재가 의심되었네.
당시 목격자들 증언의 공통점은 비행선이 원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 시체의 형태가 사람과는 다르고 하얀 피부에 모발이 없고
큰 머리와 눈, 왜소한 체격이라고 했네. 지금 우리가 눈 앞에서 본 그들과 너무나도 유사하지 않나?"
"그런데 제임스. 외계인에 대한 많은 사진자료와 동영상이 조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자네 생각이 너무 크게 앞서가는 것
아닌가? 현재 당시의 구소련과 냉전상태에 있던 미국의 비밀무기 실험으로 알려져 있어서 한낱 해프닝으로 끝난 것 아닌가?"
"바로 그거야!! 조작 말이야. 어쩌면 미정부는 언론과 시민들이 스스로 유포한 거짓자료를 통해 로스웰 사건을 그냥 해프닝으로
묻히게 만들고 싶어했는지 몰라. 로스웰 사건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언론이나 음모론자들이 만든 정교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그 사건 자체를 부정하겠지?"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네. 하여튼 자료 요청을 해 보겠네. 이 상황에서는 일급비밀일 필요도 없겠지."
한 번의 외계인 공격으로 지구는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 버렸다.
막강한 화력의 외계인의 공격을 목격한 시민들은 서서히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외계인에게 항복하자는 세력이 증가하면서 그 반대 세력과의 충돌이 전 지구적으로 혼란과 분쟁을 야기시켰다.
약소 국가를 중심으로 항복선언이 이어지고 모든 군사정보가 외계인에게 전송되었다.
몇몇 국가만이 끝까지 저항을 선언했지만 이미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머지않아 전 지구가 백기를 들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네바다 주에 있는 미 군사령부 지하 통제실.
어떠한 핵공격이나 외부공격으로부터 보호받고 2년간 생존할 수 있는 물자가 제공된다.
미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의 대피소이기도 하다.
긴급 안보회의가 소집되자 제임스 박사는 서둘러 지하 대피소로 향했다.
"국방장관. 현 상황을 보고하시오."
대통령의 명령에 국방장관은 대형 모니터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하였다.
"현재 외계 생명체의 공격으로 군사력에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미국에서만 지대공 미사일이 13261발이 발사되었으나 모두 격추되었으며, 전투기 또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공군 전투기 431대, 해군항모 전투기 152대가 격추되거나 기체 손상으로 추락하였습니다.
해군함정도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제7함대 소속 구축함 5대가 완파 되었으며,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선체 이상으로 거의 무력화된 상태입니다. 핵무기는 아직 안전한 상태입니다."
대통령은 입을 굳게 다문채 넋을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였다.
"후....그래 좋아. 그렇다면 국방장관.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입혔나?"
"전 세계적으로 외계인의 비행선이 5기 추락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 중 2기는 미국내에서 추락하였습니다."
"젠장!! 우리가 격추시킨게 단 2기란 말인가? 우린 병력의 3분의 1이 사라졌는데 이게 말이 되나?"
"죄송합니다. 각하! 현재 병력으로서는 그들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대통령은 깊은 한숨을 내 뱉으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추락한 그들의 비행선에 대한 보고가 있나?"
"네. 잠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몇 가지 올라온 내용이 있습니다. 그들의 비행선은 무인조종이었으며 비행선 내부에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비행선 자체 소재는 지구에서 사용하는 금속과는 약간 다른 것이었고,
매우 단단하고 열에 강한 소재였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주 에너지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그들만이 사용하는 배터리를 통해 에너지가 공급되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충전 후 다시 재공격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치겠군. 우리가 벌집을 건드린 건가? 이봐 제임스 박사. 당신 말 좀 들어보세."
제임스 박사는 옆에 앉아 있는 나사국장의 눈치를 잠시 살핀 후 입을 열었다.
"현재 혜성의 진로는 우리가 예상한 곳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달에 충돌할 것으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 구조선이 발사되어 세이브어스 승무원들을....."
"이보게 제임스 박사!! 지금 우리는 혜성의 충돌을 막으려다가 더 큰 재앙에 직면해있단 말이오!!"
대통령은 격앙된 목소리로 제임스 박사의 말을 끊었다.
"각하. 혜성을 막지 못했다면 저희는 이 자리에서 수십억명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을 봐야할 겁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의 공격이 혜성 충돌만큼 아주 파괴적이지는 않다는 겁니다."
"파괴적이지 않다? 한번에 죽는 것보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낫다는 것인가?"
"어차피 혜성 충돌이 일어났어도 그들은 우리를 무력으로 정복했을 겁니다."
대통령은 잠시 왼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후.....제임스 박사. 당신이 생각하는 해결방안이 있소? 핵무기를 사용하는 건 어떻소?"
"핵무기 사용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까지 몰살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 비행선의 기동성으로 볼 때 우리의 핵미사일이
모두 격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여기 있는 사람 아무라도 얘기 좀 해 보시오!!"
제임스 박사는 잠시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하.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 말에 회의석장의 모든 시선이 제임스 박사를 향하였다.
"그들은 왜 우리의 문명을 시험한다며 혜성을 보냈을까요? 왜 그 혜성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비행선의 주함선은 지구에 오지 않는 것일까요? 언제든지 우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데 왜 군사정보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달에 있으면서도 항상 태양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요? 그들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해답의 열쇠는 1947년에 일어났던 로스웰 비행선 추락사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세이브어스호를 구출하기 위한 구조선이 출발하였다.
외계인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달이 위치하는 지구 반대편에서 비밀스럽게 출발하였다. 구조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세이브어스의 승무원들은 생사를 같이 해야할 나사(NASA)의 동료이기에 반드시 구출해야만 했다.
“휴스턴, 휴스턴, 여기는 알파원.”
“여기는 휴스턴, 알파원. 말하라.”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아직까지는 위험요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알았다. 알파원. 세이브어스호와의 통신채널을 24시간 개방하고, 지속적으로 교신을 시도하라.”
“알았다. 휴스턴. 최선을 다하겠다.”
지하통제실에서 지휘하는 제임스 박사는 세이브어스호의 구조선인 알파원의 진로를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인공위성이 거의 파괴된 상태라 언제 교신이 두절될지 몰라 알파원조차 제2의 세이브어스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외계인에게 항복하는 국가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각 국가의 모든 군사정보가 노출되었고,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 강대국들이 끝까지 대항할 것을 다짐하였지만 곧 그들은 그 선택이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외계인의 2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수천기의 비행선들이 다시 지구를 향해 돌진하며, 갈고리같은 모양의 비행선 전면부가 다시 청백색 섬광으로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항복을 선언한 국가들은 아무런 방어태세를 갖추지 않았고, 항복을 거부한 몇몇 국가만이 방어태세를 갖추고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선들이 대류권에 진입하자 다시 지대공 미사일이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전과는 확연히 줄어든 화력이었다.
몇몇 국가에서만 쏘아 올려지는 소수의 지대공 미사일은 외계인들에게는 놀이감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들의 강력한 광선빔은
여지없이 한기 한기의 지대공미사일을 정확히 녹여 증발시켜버렸다.
그들은 또한 얻어진 군사정보를 바탕으로 항복한 국가들의 군사기지들을 무차별로 폭격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쏘아 올려지는 지대공미사일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출격한
전투기 또한 더 이상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 보였다.
다시 TV에 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미개한 문명이여. 저항은 곧 죽음이다.”
이 짤막한 멘트를 남긴 그들은 곧 전 세계 주요 건물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백악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뉴욕의 주요 건물들, 에펠탑, 크레믈린궁전, 타지마할, 도쿄타워, 두바이호텔...
심지어 피라미드까지 증발시키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이 녹아내리며 증발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시민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저항하는 수단으로 생각되는 것은 물론 각 국가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을 모두 증발시켰다.
나사의 기지국과 발사대 또한 증발되어 예전에 그 자리가 우주선이 발사되었다는 장소였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지하 통제실에서 지켜보던 제임스 박사는 고개를 떨군 채 말문을 열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미국이 곧 항복을 선언하고 모든 군사정보를 그들에게 전송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에게
큰 충격이 되지 않았다.
모든 군사정보가 외계인들에게 전송되자 그들은 곧바로 군사시설 파괴에 들어갔다.
육군, 공군, 해군 할 것 없이 주요 장비는 모조리 광선빔의 위력에 증발해 버렸다. 심지어 바다속의 핵추진 잠수함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시켜버렸다.
수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공격은 멈추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중단은 지구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갈갈이 찢겨 저항할 힘조차 없는 지구인들에게 그들은 한없이 무자비했다.
그들이 혜성의 진로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혜성 표면에 박힌 수천기의 비행선들이 추진기를 작동시켜 서서히 혜성의 진로를 지구쪽으로 바꾸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혜성을 밀어내어 진로를 틀어놓았다.
“제임스...제임스....”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통제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제임스 박사를 브라이언 박사가 흔들어 깨웠다.
“이봐, 제임스. 여기 국방성의 로스웰 사건에 대한 일급 기밀자료일세.”
잠에서 깨어나 얼굴을 맨손으로 세수하듯이 몇 번 문지르던 제임스 박사는 짤막한 대답으로 응했다.
“고맙네. 브라이언”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네. 제임스. 혜성의 진로가 바뀌었어. 그들이 바꾼것 같네 지구를 향해”
“그래.....”
이제 더 이상 제임스 박사에게 충격과 공포는 없었다.
제임스 박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가 브라이언 박사에게 밖에 나갈 것을 권했다.
“브라이언, 이 갑갑한 지하 통제실에서 나가자구. 밖의 신선한 공기 좀 마시자. 언제 밖에 나와서 숨을 쉴지 모르지 않나?“
브라이언 박사는 쓴웃음을 한 번 짓더니 흔쾌히 응했다.
밖을 나온 제임스와 브라이언 박사는 네바다주의 드넓은 사막과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유난히 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마음껏
숨을 들이쉬었다.
“와우..상쾌하구만!! 어때 브라이언 좋지 않나?”
“그래. 그런 것 같군.”
“우리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 무엇을 남겼을까?”
“결코 좋은 것을 남겼던 것 같진 않아. 만년에 걸친 인류의 문명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고,
또 이 지구를 황폐화시키지 않았나? 먼 훗날 이 지구에 살아남은 생명체들이 우리 인간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브라이언 박사의 말에 제임스 박사는 몇 번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다.
“난 저들이 어쩌면 우리의 미래 모습일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저들을 만나지 않고 다른 행성에 갔을 때 우리는 평화적으로
외계 생명체를 대할까?”
그 때 통제실의 한 연구원이 급하게 밖으로 나와 둘을 불렀다.
“제임스 박사님, 브라이언 박사님!! 알파원으로부터 교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초원을 가로지르는 신선한 공기를 다시하번 깊이 들이 마시고는
지하 통제실로 향했다.
“알파원!! 응답하라. 여기는 휴스턴이다.”
“휴스턴. 여기는 알파원이다.”
“무슨일인가? 알파원!!”
“세이브어스호의 신호가 미세하게 잡힌다. 끊어졌다 연결되었다를 반복한다. 아직 생존해 있는 것 같다.“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가? 알파원.”
“위치를 추적하기에는 너무 신호가 약하다. 계속 교신 시도를 해 보겠다.”
“들어온 내용은 없는가?”
“방금전 세이브어스와 교신한 내용을 전송하겠다.”
제임스 박사는 통제실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곧바로 교신내용이 통제실에 울려퍼졌다.
“세이브어스.. 세이브어스..응답하라. 여기는 구조선 알파원이다.”
“치이이이익....치익..알파원....여기는..치익......세....어스호다.”
“세이브어스!! 여기는 알파원 현재 위치를 전송하라.”
“치이이...익. 전력이 부족하다..치이이......송신기에 문제가..치이이...수신기.......치이이이익..양호하다...치이~~~~~~익...
“알았다. 세이브어스. 수신채널을 24시간 개방하라.”
“치이~~~~익....”
“들리는가? 세이브어스. 여기는 알파원이다!!”
“치~~~~~~~~~~~~이익”
교신 내용을 들은 제임스 박사는 일단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정말 다행이군..”
옆에서 지켜보던 브라이언 박사는 갑자기 껄껄대며 웃기 시작하였다.
“왜 그런가? 브라이언.”
“웃기지 않나? 지금 외계인들이 지구를 먹으려고 하고, 혜성까지 지구로 돌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명령하고 있으니.“
“어떡하나. 브라이언. 그들을 버릴 수 없지 않는가?"
잠시 웃음을 멈춘 브라이언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미안하네. 제임스. 내가 잠시 실성한 것 같네.”
“이제 로스웰 사건 기록을 분석해 보세.”
혜성의 궤도가 수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구는 거의 지옥을 따로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끔찍한 만행으로 들끓었다.
살인, ㅁㅁ, 약탈, 방화....지구는 혜성이 충돌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각 국의 주요 인물들은 수백미터의 지하 대피소를 이동하였지만 지상에 남아있는 자들은 아비규환의 혼란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지키며 약육강식의 야생 세계같은 시간시간을 이어가야만 했다.
‘문건 분류 : 국방성 일급기밀. 이 문건의 어떠한 내용도 언론이나 일급기밀 관리자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배포할 수 없다.
제목 : 1947년 7월 4일 뉴 멕시코주 로스웰에 추락한 미확인 비행체에 대한 보고서
내용 : 추락한 미확인 미행체는 지역 주민에게 최초로 발견됨.
추락한 비행체는 미국이나 어떤 다른 국가에서도 보고되지 않은 형태와 기능을 갖고 있음.
비행선 본체 소재 : 지구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금속형태. 매우 가볍고 열에 강함. 미세하게 반중력효과가
나타남. 방사선을 차폐하는 기능은 떨어짐.
비행방법 : 공기의 양력보다는 반중력효과를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임.
에너지원 : 청백색 광택을 내는 원석 종류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으로 보임.
어떤 과정으로 다른 에너지형태로 전환시키는지 아직까지 불명확함.
탑승한 생명체 : 전체적인 형태는 인간과 비슷함. 눈의 기능은 발달되어 있으나 코와 입의 기능은 많이 퇴화됨.
내장의 구조와 기능은 인간과 흡사함. 피부는 아주 얇고 질긴 막으로 되어 있으며, 흰색에 가까워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손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됨. 사망원인은 외부 타격보다는 세포손상이 클 것으로 판단됨. 조직검사 결과 거의 모든 부위의
세포들이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파괴되어 있음...........‘
문건을 쭈욱 읽어가던 제임스 박사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브라이언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브라이언. 이제야 그들이 지구의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겠네.”
“나도 알 것 같은데.”
“생각이 일치하는지 동시에 말해 볼까? 하나, 둘, 셋!!”
“반알렌대!!!!”
- 반 알렌대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강한 방사능 층으로 미국의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어1호가 이것을 발견했으며, 미국의 물리학자 J.A.밴 앨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뒤 껄껄 웃어댔다.
“그들은 방사선에 약한 거야. 아니 방사선을 경험한 적이 없을 수도 있어. 그들의 주 항성이 미약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온도가
낮은 천체일 가능성이 높아.”
“맞아. 제임스. 그래서 눈이 그렇게 지나치게 큰 거야. 피부도 굉장히 약하고..1947년 추락한 비행선은 지구 대기의 강력한 방사선층인 반알렌대를 모르고 진입했다가 추락한거야. 그들에게 방사선은 매우 치명적이고 게다가 방사선을 막을 재료조차 없을지도 몰라.”
“이제 모든 게 설명이 되는군. 소량이긴 하지만 태양에서 지속적으로 쏟아지는 방사선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주함선은
계속 태양이 비치는 달 표면의 반대편에 있었던 거야. 지구를 공격할 때도 생명체가 조종하는 비행선이 아닌 무인비행선을 보냈던거야. 게다가 지구를 언제든지 정복할 수 있음에도 시간을 끌었던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방사선 무기.....”
“그래. 핵무기를 두려워했던거지. 그래서 우리 군사정보를 요구했고, 그렇게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모든 핵무기를 무력화시켜 버린거지.”
말을 이어가다 잠시 멈춘 브라이언 박사는 제임스 박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혜성을 보냈을까? 제임스.”
“아마, 우리의 무기 성능을 테스트해 본 거지도 몰라. 아마 수소폭탄의 위력에 깜짝 놀랐을 수도 있지.....!!”
순간 말을 하던 제임스 박사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이봐, 브라이언!!! 혜성!!....세이브어스호 선장이 혜성 폭파 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혜성의 반대편에 큰 구멍이 있다고 했어!!”
“그런데?..............아...아니 설마!!”
“맞아! 브라이언. 혜성 안에 숨어 주함선이 반알렌대를 뚫고 들어올 생각인거야!!
그리고는 나중에 혜성을 연기처럼 증발시킬 수도 있어. 그들은 지구를 더럽게 만들고 정복하고 싶진 않을거야.”
브라이언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젠장!! 왜 이제야 이걸 알게 된 걸까? 지금이라도 국방성에 핵공격을 요청할까?”
“남은 핵무기가 있을까? 게다가 그들은 핵미사일이 쏘아 올려지기도 전에 미사일을 증발시켜버릴거야. 얻어진 정보로 발사 위치까지 다 알고 있으니...”
브라이언은 미친듯이 책상을 쾅쾅 두들겨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젠장아아앙!!”
30분이 넘도록 제임스 박사와 브라이언 박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말문을 열지 않았다.
“휴스턴. 여기는 알파원이다.”
알파원의 교신시도에 조용히 제임스 박사는 송수신기를 들었다.
“말하라. 알파원.”
“세이브어스호의 신호가 너무나 미약하다. 위치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이브어스호의 수신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하여 우리의 위치를 계속 전송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알았다. 알파원. 세이브어스호는 연료가 바닥났을 것이다. 우리가 찾지 못하면 끝난 것이다.
외계인에게 발각되면 알파원도 위험하다. 규정시간이 지나면 철수하라.”
제임스 박사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탁자에 두 손을 받치고 한참 동안 모니터 속의 끓고 있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조용히 세이브어스호와의 교신 채널을 열고 혼자 읊조리기 시작했다.
“선장, 잘 지내는가? 대원들은 모두 다 안전한지 모르겠군.
자네가 돌아오면 시원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카드게임이나 할까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구조선 알파원이 세이브어스호를 찾지 못하고 있네. 도대체 어디 있는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지 않았던 제임스 박사는 갑자기 북받쳐오는 설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선장, 내가 재미있는 얘기하나 해 줄까? 흥미진진한 얘기지. 우리가 저들의 약점을 알아냈어......”
제임스 박사는 답변도 없는 송수신기 앞에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와 대화를 나누 듯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지구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려주는데 만도 수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제임스 박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혼자 말하고 혼자 울고, 혼자 웃으며.....
약 10시간 뒤 혜성이 달을 지나치며 지구를 향하게 되자 외계인의 주함선이 엄청난 광채를 뿜으며 달 표면에서 이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진로를 혜성의 후면으로 향하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구에서는 죽음직전 마지막으로 혜성의 충돌을 목격하려는 사람들로 거리거리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대부분 지하대피소로 이동하였지만 혜성의 충돌 후 이어질 외계인들의 공격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한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거대한 우주쇼를 감상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 다이아몬드플러시입니다. 다들 접으시죠.”
“미안하군. 난 에이스 풀하우스인데..”
부선장이 내민 카드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어허...이거 어떡하지? 나는 포카드인데...”
선장이 마지막으로 카드를 내밀자 다들 야유를 보냈다.
“이런..항상 선장님이 이기시는 것 같네요. 선수네요. 선수”
“그런가? 하하하...”
웃음인가 울음인가? 선장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제임스 박사의 목소리를 수시간이 넘도록 들으며 승무원들과 카드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우주선을 통제할 연료도 없고 이젠 전력도 다 끊겨 간다.
송신기는 망가진지 오래이고, 수신기만 간신히 작동하여 제임스 박사의 목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성에에 묻혀 얼어가는 장비와 기기들이 조종실 내부의 온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 슬픈 웃음도 잠시...우주선 내부는 다시 죽음같은 적막에 휩싸였다.
선장은 들고 있던 카드를 손톱으로 긁으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깔대기같은 긴 입김을 내뿜으며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할일을 남겨줘서 고맙네. 제임스 박사....”
드디어 외계인의 주함선이 혜성의 후면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매우 정교하게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 주함선은 천천히 구멍안으로 진입하였다.
주 조종실의 외계인은 거의 퇴화된 작은 입으로 승리의 쾌감이라도 표출하려는 듯 가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혜성의 구멍 저 깊은 곳에 조약돌같이 작은 비행체가 착륙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커다란 눈이 매섭게 돌변하였다.
"손님이 오셨군. 준비하세.”
선장을 포함한 모든 승무원들이 비장한 모습으로 조종실의 한 가운데 모여 어떤 붉은 색 버튼 위에 모두 손을 모았다.
"제군들!!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는 우주 비행사가 될 것이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는 제군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나와 끝까지 같이 하겠나?”
승무원들은 한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얼굴이 뒤범벅되었지만 표정은 모두 웃고 있었다.
“예. 선장님!!”
하얗게 성에로 뒤덮힌 대원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던 선장이 입을 열었다.
“지구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잘 가라. 나쁜 놈들!!”
선장의 이 말과 동시에 버튼 위에 모인 손들은 동시에 떨어졌고, 세이브어스호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기의 수소폭탄이 섬광을
내뿜었다.
엄청난 폭발력과 쏟아지는 방사선에 함선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함선의 중간 중간에서 청백색의 광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광채는 혜성의 내부를 무지막지한 속도로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거북의 등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주 함선은
내부의 엄청난 에너지 포화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였다.
섬광이라는 표현밖에 없었다. 혜성은 연기처럼 증발하였고, 지구에서는 또 하나의 작은 태양이 뜬 것처럼 엄청난 빛의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수 일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엔본부 자리에서 간간히 흩날리는 빗속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성명이 있었다.
남은 몇 기의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데도 불구하고 유엔본부 앞에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운집하여 온몸에
쏟아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사무총장의 연설을 경청했다.
“친애하는 전 세계 시민 여러분.
우리는 참혹한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의 잔재 속에 살아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집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요와 폭동, 분쟁을 즉각 중지하여 주십시오.
무자비하고 잔혹한 그들이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우리에게 잔혹한 존재는 우리 자신이 아닐까 되돌아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상처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더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이제 힘을 합칩시다.
이제 다시 우리의 문명을 재건합시다. 친애하는 전 세계 시민 여러분....”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경청하는 수십만의 군중 속에는 긴 외투를 입고 우두커니 서 있는 제임스 박사도 있었다.
연설이 끝날 쯤 제임스 박사는 조용히 뒤돌아섰다.
그 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있었다. 누가 버린지 모를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였다.
제임스 박사는 그것을 천천히 집어들고 반 이상 불에 그을려 훼손된 그것을 말없이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초점의 목표가 어딘지 모를 하늘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조용히 얼굴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빗방울의 차가움을 느끼며 이 기분이 영원하기를...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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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 대단하시군요 추천드리고 갑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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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소설을 이렇게 진지하게 읽기는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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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글을 쓰는 실력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오네요 추천은 당연한거겠죠 ㅎ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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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대작이네요ㄷㄷ읽는데오래걸렸습니다. 영화한편본것같은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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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후반부부턴 인디펜던스 데이가 아닌가 싶은데.. 근사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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