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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는 용어가 더 상위급 존칭인데 교수라면서 그것도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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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 선생님이 책 내신 게 있어서 그에 관한 서평 쓰다가 추억을 살려 넣은 일화입니다. 제가 수능을 실패해서 대학간 케이스인데, 지금은 실패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금 안사람을 만난 것이고, 둘째는 스승다운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 첫 수업. 3월의 어수선함에 수강 변경 기간까지 겹친 이 기간은 다수의 학생들에게 날림의 대상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앞으로 한 학기나 들여다 볼 수업을 한 시간 늦게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지만 노교수의 첫 시간은 달랐다. 이 교수는 수업의 첫걸음을 책으로 디뎠다. 이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열의에 들뜬,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심드렁한, 책 예찬론이 아니었다. 책에 대한 상세한 기술(記述)이었다, 양장 · 반양장 · 문고판과 같은 흔히들 아는 겉장으로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하여 책의 크기 · 두께 · 종의 질로서의 분류, 속지 · 덧지, 띠지, 가름끈 등의 책 부분 부분의 명칭까지. 나아가 지은이 소개를 ‘읽는’ 법, 책의 출판요문 보는 방법(첫 장 혹은 마지막 장에 있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기록. 출판인, 편집인, 출판일 등이 기록된 부분), 그리고 책의 뼈대인 주석과 참고문헌, 또한 색인을 통해 잘 쓰인 책 구별하는 방법 등 책 자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한 시간이 넘게 설명했다. 빗댄다면 정육점에 걸려있는 식용 부위로 표시된 한우 그림처럼 그렇게 앳된 제자들에게 책을 ‘보여 준’ 셈이다. 그리고 그 다채로운 수업의 마무리 말은, ‘여러분이 사랑을 한다면, 누구든 그 대상을 외형부터 관찰하는 게 시작입니다. 오늘 첫 시간은 여러분이 한 학기 동안 사랑할 대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열심히 부둥켜안아 봅시다.’ 창 안으로 스며드는 물오름달의 꽃 시샘에도 대학의 낭만은 살아 있었다. 그 뒤로 지호에게 교수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수업외 사담에서도 꽤나 소탈한 모습을 보였는데, ‘교수님과 선생님’의 쓰임에 대한 구분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이른 바, 가르치는 이를 두고 부름말이 교수니 뭐니 하는데, 이는 지칭과 호칭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서 그렇다. 교수는 직함이니 지칭이고, 그 교수를 부르는 말은 바로 ‘선생님’이다. 가르치는 이를 부르는 말은,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모두 호칭은 ‘선생’이다. 왜 그런 줄 아느냐? 그들이 선생인 건 다만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다.’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아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누구든 다음 세대에게는 선생이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수’소리 듣기 좋아하는 부류들은, 직함은 교수일지언정 ‘선생’은 되지 못한다. 더욱이 국어국문과에서 이걸 못 나눈다는 게 말이 되나?” 덕분에 적어도 지호의 과에서는 대다수 호칭으로 교수님이란 말을 붙이지 않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면하는 자세로, 가르치는 그들을 애정과 존경을 담아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는 지호의 과에 전통 아닌 전통이었다. 물론 과의 다른 ‘교수’들은 듣는 사람 입장으로서 좀 아니꼬웠을 수도 있겠고, 학생들 또한 융통성 있게 ‘우리 과’ 안에서만 한정으로 호칭과 지칭을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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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졸라 찌질하네 ㅡ_ㅡ 교수 프라이드 쩌는구만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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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졸라 찌질하네 ㅡ_ㅡ 교수 프라이드 쩌는구만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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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는 용어가 더 상위급 존칭인데 교수라면서 그것도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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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 선생님이 책 내신 게 있어서 그에 관한 서평 쓰다가 추억을 살려 넣은 일화입니다. 제가 수능을 실패해서 대학간 케이스인데, 지금은 실패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금 안사람을 만난 것이고, 둘째는 스승다운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 첫 수업. 3월의 어수선함에 수강 변경 기간까지 겹친 이 기간은 다수의 학생들에게 날림의 대상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앞으로 한 학기나 들여다 볼 수업을 한 시간 늦게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지만 노교수의 첫 시간은 달랐다. 이 교수는 수업의 첫걸음을 책으로 디뎠다. 이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열의에 들뜬,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심드렁한, 책 예찬론이 아니었다. 책에 대한 상세한 기술(記述)이었다, 양장 · 반양장 · 문고판과 같은 흔히들 아는 겉장으로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하여 책의 크기 · 두께 · 종의 질로서의 분류, 속지 · 덧지, 띠지, 가름끈 등의 책 부분 부분의 명칭까지. 나아가 지은이 소개를 ‘읽는’ 법, 책의 출판요문 보는 방법(첫 장 혹은 마지막 장에 있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기록. 출판인, 편집인, 출판일 등이 기록된 부분), 그리고 책의 뼈대인 주석과 참고문헌, 또한 색인을 통해 잘 쓰인 책 구별하는 방법 등 책 자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한 시간이 넘게 설명했다. 빗댄다면 정육점에 걸려있는 식용 부위로 표시된 한우 그림처럼 그렇게 앳된 제자들에게 책을 ‘보여 준’ 셈이다. 그리고 그 다채로운 수업의 마무리 말은, ‘여러분이 사랑을 한다면, 누구든 그 대상을 외형부터 관찰하는 게 시작입니다. 오늘 첫 시간은 여러분이 한 학기 동안 사랑할 대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열심히 부둥켜안아 봅시다.’ 창 안으로 스며드는 물오름달의 꽃 시샘에도 대학의 낭만은 살아 있었다. 그 뒤로 지호에게 교수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수업외 사담에서도 꽤나 소탈한 모습을 보였는데, ‘교수님과 선생님’의 쓰임에 대한 구분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이른 바, 가르치는 이를 두고 부름말이 교수니 뭐니 하는데, 이는 지칭과 호칭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서 그렇다. 교수는 직함이니 지칭이고, 그 교수를 부르는 말은 바로 ‘선생님’이다. 가르치는 이를 부르는 말은,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모두 호칭은 ‘선생’이다. 왜 그런 줄 아느냐? 그들이 선생인 건 다만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다.’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아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누구든 다음 세대에게는 선생이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수’소리 듣기 좋아하는 부류들은, 직함은 교수일지언정 ‘선생’은 되지 못한다. 더욱이 국어국문과에서 이걸 못 나눈다는 게 말이 되나?” 덕분에 적어도 지호의 과에서는 대다수 호칭으로 교수님이란 말을 붙이지 않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면하는 자세로, 가르치는 그들을 애정과 존경을 담아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는 지호의 과에 전통 아닌 전통이었다. 물론 과의 다른 ‘교수’들은 듣는 사람 입장으로서 좀 아니꼬웠을 수도 있겠고, 학생들 또한 융통성 있게 ‘우리 과’ 안에서만 한정으로 호칭과 지칭을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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