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 앤 넌센스 : 20세기를 뒤흔든 진화론의 핵심을 망라한 세계적 권위의 교과서
정가 - 19,000원
인간은 과연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것인가?
왜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진화론이라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는 것일까?
진화론은 모든 인간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마법의 이론인가?
찰스 다윈 이후 150여 년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진화론에 덧씌워진 오명과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로 대중을 현혹시킨
얼치기 과학을 낱낱이 파헤친 진화론의 바이블!
무엇이 진짜 과학이고, 무엇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한가?
20세기를 뒤흔든 진화론의 핵심을 망라한 세계적 권위의 진화론 바이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아이디어를 낸 학자를 꼽으라면 나는 다윈을 꼽겠다."
철학자 대니얼 C. 데닛의 말이다. 굳이 데닛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이론이 20세기 인류에 끼친 강력한 영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 개념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남겼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물론 경제행동, 문화, 역사, 인문 등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찰스 다윈 이후 진화론의 역사는 20세기를 뒤흔든 이론답게 그 엄청난 영향력만큼이나 오명과 누명으로 점철된 역사이기도 했다.
신간 [센스 앤 넌센스](원제- Sense & Nonsense)는 진화론에 대한 오해와 오용의 역사, 그리고 현대 진화론의 여러 갈래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은이들은 진화론에 덧씌워진 오명을 벗겨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대중들을 현혹한 얼치기 과학에 경종을 울린다.
진화론 이야기만 나오면 과민반응을 보이는 인문사회과학자들, 이유가 뭘까?
인간의 본성을 생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노력은 양육과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과학자들과 마찰을 자주 빚었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은 '진보주의', '인종차별', '성이나 계급적 불평등의 정당화' 논리와 연결되어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는 지난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다윈의 견해는 장 라마르크와 프랜시스 골턴 그리고 허버트 스펜서를 거치면서 '진화는 진보'이며, '월등한 유전자가 살아남고, 천재는 유전된다'라는 우생학적 주장 그리고 사회 또한 진화해 열등하고 야만적인 사회와 문명사회로 나뉜다는 사회진화론으로 발전했다. 이런 견해는 문명과 야만, 인종차별, 성과 계급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기도 했다. "백만장자도 자연선택의 결과이며, 사회주의는 부적격자들의 생존을 증진"한다고 주장했던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윌리엄 섬너나, 인종의 순수성이 필요하다며 '인종청소'라는 범죄를 저질렀던 히틀러가 그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이런 직선적?진보적 진화론은 사실 다윈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며, 라마르크나 사회진화를 주장했던 허버트 스펜서의 사상이 당시 미국의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지은이들은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말보다는 '사회적 스펜서주의'라고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런 평가는 새롭지는 않지만, 여전히 '진보적 진화론'이라는 오명의 굴레를 쓰고 있는 다윈주의의 복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진화론과 관련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우리의 정신은 본래 원시시대의 수렵채집인처럼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 일뿐이다. 남성의 바람기는 불가피하며, 인간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위의 유명인의 발언에서, 또 언론보도와 대중과학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말들이다. 인간의 성 행동, 매춘, 짝짓기, 살인, 범죄 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들은 과학적으로 올바른 것일까? 적절한 가설과 실험연구가 동반된 것일까?
지은이들은 책에서 20세기 중후반부터 언론과 대중과학서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진화론적 이야기들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 도킨스의 '밈', 윌슨의 '통섭' 등과 같은 진화론적 설명의 맹점을 조목조목 집어낸다. 이를테면, 1990년대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밈 이론이 왜 학자들 사이에서는 외면을 받았으며 이후 급격하게 쇠퇴했는지, '현대인은 후기 산업사회를 사는 석기시대인'에 불과하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은 가장 근본적인 의문, 즉 '현대인은 석기시대의 환경과 조상들의 삶을 알 수 없다'라는 반론에 왜 취약한지를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도킨스와 윌슨류의 진화생물학을 넘어서
그렇다고 이 책이 리처드 도킨스와 에드워드 윌슨, 데이비드 버스와 같은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연구와 작업이 진화생물학에 숱한 기여를 하고 대중들에게 진화생물학을 전파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행동을 진화론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저돌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상당히 당파적인 경우가 많아 다양한 진화이론에 배타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과학이 생물학의 하위분야가 될 것이라 예견해 사회과학자들로부터 크게 반발을 샀던 에드워드 윌슨은 배타주의와 학문제국주의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사회생물학 논쟁은 3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은이들은 이런 학문적 배타주의와 학문제국주의가 진화론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진화이론들, 이를테면 인간행동생태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등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다룸으로써 진화생물학자들뿐만 아니라 인류학자, 사회학자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다양한 진화이론의 완벽한 지적 계보도
인간의 본성과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생물학적 노력은 진화론과 함께 20세기에 꽃을 피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온갖 오해와 악용 그리고 인문사회과학과의 극단적 대립을 낳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오해와 대립을 건설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에 대한 올바른 평가, 그리고 사회과학과 생물학의 극단적 견해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책은 인간의 본성을 진화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에 종속된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는 선정적 주장이나 사회과학은 결국 생물학으로 환원되고 말 것이라는 단정적 예언을 넘어 진정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20세기 진화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다섯 가지 접근법, 즉 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주요 개념과 비판적 평가를 간결하게 제시하면서도 이타성, 수유, 폐경, 원시부족들의 사냥, 결혼관습,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 배우자 선택 기준, 낙농업과 젖당 분해 유전자와의 관계, 살인, 전쟁, 자식과 부모 간의 갈등 등 다양한 사례연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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