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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진짜 갑옷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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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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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0// 비하가 아니라 실제로 사실입니다. 맥이 완전히 끈어진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그런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조선시대에 국가에 전속된 장인이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국가소속된 사람들 한정입니다. 그시절 칼이나 갑옷 만드는 사람이 국가에서 일하는 사람 뿐이었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그렇게나 국가에서 잘 챙겨줬는데 왜 오늘날엔 그런 전문 기술자가 소수에 불과한가요?? 한 예로 우리나라 전통도검은 왜 맥이 끈어졌나요?? 시간이 지날수록 수요가 없어서?? 아니면 전쟁통에 사고로 사라져서?? 똑같은 조건에 옆나라 일본과 우리나라는 왜 다른 현실인지 잘 생각해보면 답 나옵니다.
15.11.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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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1068261968// 당근 그 당시엔 무조건 100% 수공품인데요.. 문제는 오늘날 현시대에도 100% 수공품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저런건 21세기가 된 지금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사람이 일일이 작업해야 한다네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런거 만드는 사람 자체를 엄청 천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어서, 오늘날엔 명인 클래스의 실력자가 없다시피 하지만, 일본에선 지금도 이런 갑옷제작기술을 대대로 전승해서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서양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하고 만든 갑옷은 엄청 비쌉니다.
15.11.05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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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ken// 조선시대에도 병기창에 전속된 장인이 나라의 지원하에 제작했으며, 현재 한국전통갑옷은 문화재보존을 위한 지원금을 받으며 장인들이 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하하는 왜곡된 글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15.11.0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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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댓글로는 조선의 두정갑을 최초의 현대적 방탄조끼라고 주장하셨는데 두정갑은 애초에 몽골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게 된 갑옷이 발전한 형태입니다. 당연히 조선 이전엔 몽골이 사용했고, 역시 몽골의 영향을 받은 여진족도 사용합니다. 청나라군의 갑주의 형태가 조선의 두정갑과 매우 유사한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죠. 또 외국의 경우엔, 서유럽의 브리간딘(Brigandine), 러시아의 쿠야크(kuyak), 아랍의 챨타 하자르 마샤(Chihal'Ta Hazar Masha) 갑옷등이 두정갑의 형태를 가졌습니다. 두정갑은 조선만이 가진 특유의 갑옷형태가 아닌걸 알 수 있죠. 거기에 이 갑옷들은 물론 조선의 두정갑도 방탄조끼와는 거리가 멉니다. 방탄능력이 없으니까요. 흥선 대원군에 의해 만들어진 면제배갑이 방탄복입니다. 한국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것도 좋지만 남을 깍아내리며 너무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지면 그냥 단순히 국뽕입니다.
15.11.0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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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포인트를 잘못 짚으시는데 현대 일본에 갑옷장인 많으니 무조건 최고다가 아닙니다만? 뭘 보고 찬양했다고 하시는지? 있는 그대로 말한겁니다. 현재 한국에서 장인들을 우대합니까? 진심 그렇게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볼까요? 현대 한국의 각궁 장인들은 궁술협회 때문에 각궁을 일정한 가격이상 받고 팔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각궁 하나 만들어봐야 재료비밖에 안나온다고 합니다. 무형문화재면 뭐합니까? 이름뿐이고 대우를 받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하는데요. 그리고 임란때 장인들이 끌려가서 무참히 도륙된것처럼 왜곡하시는데 전문 기술을 가진 장인들, 특히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가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잘만 살았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남아있는데요? 계속 교과서 운운하시는데 어느 교과서를 얘기하시는지?
15.11.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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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박물관에 있는 거 한국에서 팔면 얼마 정도 할까요?
15.11.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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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비쌉니다. 잘은 몰라도 서양갑옷도 마찬가지라 생각되지만, 일본갑옷의 경우 100% 수공품이라 아무리 싸구려로 만들어도 돈백은 우숩게 나갑니다. 쉽게 비교해서 현대검도에 쓰이는 호구만 해도 50~60만원 하죠. 게다가 만든 연도나 역사적인 유서가 있는 갑옷이라면 돈천만원도 우숩게 넘어가고, 이름있는 사람이 쓴거면 부르는게 값입니다. | 15.11.04 23: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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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대 무구는 전부 다 수공품 아닌가요? | 15.11.05 01: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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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1068261968// 당근 그 당시엔 무조건 100% 수공품인데요.. 문제는 오늘날 현시대에도 100% 수공품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저런건 21세기가 된 지금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사람이 일일이 작업해야 한다네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런거 만드는 사람 자체를 엄청 천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어서, 오늘날엔 명인 클래스의 실력자가 없다시피 하지만, 일본에선 지금도 이런 갑옷제작기술을 대대로 전승해서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서양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하고 만든 갑옷은 엄청 비쌉니다. | 15.11.05 03: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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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찍어내도 재료값+시설비+인건비 다 합쳐서 개당 백만원은 우습게 뛰어넘을걸요 | 15.11.05 15: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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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거 자체가 그 시절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지 않나요? 거의 그런 거 같던데 | 15.11.05 17: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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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물이니 정확한 가격은 모르겠지만 기백은 하지 않을까요. 중근세 당시엔 여러 길드에 의해 대량생산되었고 특히나 밀라노 갑옷이 대량생산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만 그래도 수공업은 수공업이라.. | 15.11.05 2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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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수공품인건 당연한게.. 저걸 대량생산할 이유가 없으니.. | 15.11.05 2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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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갑옷 하나 만드는데 무슨 성 한체값 든다고 줏어 들었는데... | 15.11.05 22: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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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과착각// 그게 또 다 그렇지만은 안습니다. ^^ 보통 드라마같은 수량이 많이 필요한 환경에선 비용과 시간을 생각해서 것만 똑같이 하거나, 제작 방식을 현대식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지퍼나 찍찍이 혹은 똑딱이 같은걸 달아서 처리하기도 하죠. ㅋㅋㅋ 전통방식을 일일이 고수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꽤나 들거든요. | 15.11.05 22: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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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ken// 조선시대에도 병기창에 전속된 장인이 나라의 지원하에 제작했으며, 현재 한국전통갑옷은 문화재보존을 위한 지원금을 받으며 장인들이 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하하는 왜곡된 글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 15.11.05 22: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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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채 가격하는 갑옷은 그당시에도 장식용 갑옷이었고 전투용갑옷은 생각보다 저렴했다고 합니다 | 15.11.05 23: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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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거 웬지 스멜이 나는데 선탑승해봄 | 15.11.06 0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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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0// 비하가 아니라 실제로 사실입니다. 맥이 완전히 끈어진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그런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조선시대에 국가에 전속된 장인이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국가소속된 사람들 한정입니다. 그시절 칼이나 갑옷 만드는 사람이 국가에서 일하는 사람 뿐이었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그렇게나 국가에서 잘 챙겨줬는데 왜 오늘날엔 그런 전문 기술자가 소수에 불과한가요?? 한 예로 우리나라 전통도검은 왜 맥이 끈어졌나요?? 시간이 지날수록 수요가 없어서?? 아니면 전쟁통에 사고로 사라져서?? 똑같은 조건에 옆나라 일본과 우리나라는 왜 다른 현실인지 잘 생각해보면 답 나옵니다. | 15.11.06 0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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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여러분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사실을 근거로 쓰시는거지요? 머릿속에 있던걸 사실인양 적지마시고 근거제시좀 | 15.11.06 0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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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없으면 못 믿겠네요. 관련 자료좀요. | 15.11.06 00: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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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당할 부동산(성) 나름이고, 그 시대/지역 물가 나름이고, 맡긴 장인이나 옵션질(사진에 있는 어떤 놈처럼 세공을 넣으면 또 인력이 많이 들어가니) 나름이죠. 현대 가치로 옮기려면 또 무엇을 기준으로 물가를 환산하나 문제도 생기는데... '한 사례'를 보면 대략 스포츠카 비슷한 가치를 지닌걸로 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자기 몸에 맞춰 쫙 빼입은 풀 플레이트 메일 한벌은 대단한 사치품이었을거란건 확실하고, 그럴 사정이 못 되서 확보되는 파트들로 대충 누더기 셋(야금야금 사모은 거든 노획한 거든 일부만 물려받은거든)이라도 두르고 다녔을 아재들도 많았을 겁니다. 속옷 상하의를 짝재기로 입고다니는 현대 서민들처럼... | 15.11.06 00: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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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저 시대는 공장이 없었으니 어느 나라건 무조건 수공품일 텐데 일본 갑옷의 경우 100% 수공품이라 아무리 싸구려로 만들어도.. 라고 하셔서 물어본 말입니다; 그리고 독일 부엌칼 브랜드 쪽에서 말하기로는 제련제강 수준이 중세 때보다 월등히 높아서 저 당시 최고 명품 칼보다 지금 텅스텐 부엌칼이 압도적으로 단단하고 날카롭다고 하다고도 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네요. 모든 칼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틀에서 찍어 내는 거고 그 후에 숫돌로 갈아서 날을 세우는 정도에 따라 예리한 정도가 바뀌는 것뿐이래나.. 제련 기술이 안 좋을 땐 여러 번 접어서 불순물을 빼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과정이 생략되어 그냥 찍어 내는 게 기본적으로 튼튼하고 품질이 좋다고 합니다. | 15.11.06 00: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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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zairai.egloos.com/2260648 꽤 오래된 글이지만 괜찮은 내용이라... | 15.11.06 00: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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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떠올라서 한마디 써보자면 현재 하이엔드 서양검 제작소를 꼽으면 투탑으로 두 곳이 꼽히는데 한 쪽은 진짜 망치로 두들겨서 만드는 완전전통수공품, 한 쪽은 철강 제품 사다가 쓰는 거라고 들었어요. 내구성 자체는 철강 제품 사다 쓰는 쪽이 좋다는듯. | 15.11.06 01: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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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갑옷은 미술복원품 수준이지 실제 갑옷 장인이 제작하는 실사용 가능한 물건이 아닙니다. 갑옷 장인, 도검 장인은 기술이 완전히 실전되었고 심지어는 맥이 잘 살아있다고 전해지는 국궁마저도 제법을 완전히 실전했다가 겨우 재복원한 수준입니다. 비하고 뭐고 이게 한국 역사문화의 현실입니다. | 15.11.06 03: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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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상공업 개천시한건 국사 조금만 배웠어도 기본적으로 아는 상식아니냐 그때 그 인식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현실인데. 그나마 요즘들어 외국에서 기술자를 엄청나게 높게 쳐주니까 국내에서도 그쪽 위상이 조금 올라갔을뿐이지 기본마인드 자체는 조선시대 그대로임 | 15.11.06 07: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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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ken님 저분이 없는 말 지어내는것도 아니고 사실대로 얘기하는건데 왜 혼자 흥분하는 분이 계신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당연히 조선시대에는 병기창에 전속된 장인이 나라의 지원하에 제작했고 현재도 한국전통갑옷은 문화재보존을 위한 지원금을 받으며 장인들이 제작하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다 알듯 무형문화재 지원은 쥐꼬리만큼에 예부터 한국에선 장인을 떠받들어주는 문화가 아니고 하는 일이 그다지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보니 대를 이을 후계자를 찾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이는 꼭 갑옷을 만드는 장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라 그냥 한국의 현실이죠. 일본 여러곳에선 일정 축제나 행사때 되면 갑옷을 입고 퍼레이드를 한다거나 직접 만든 갑옷들을 전시한다거나 하는 이벤트도 꽤 있고 취미로 갑옷 제작을 가르치는 단체도 있는등, 한국에 비해서 이런 문화가 훨씬 친숙합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드라마나 영화만 봐도 답이 나오는데, 일본 사극들을 보면 오바스러울 정도로 아시가루들까지 죄다 완전무장 시켜서 찍는게 다반사입니다. 그에 반해 한국 사극들을 보면 조선 전기고 후기고 따지지 않고 대부분 장수들을 제외하면 갑옷을 입혀놓지도 않거나 그마저도 판타지 갑옷을 주로 사용합니다. 한국에 갑옷을 만드는 장인들이 많아 갑옷을 구하는게 그리 힘들지 않고 한국인들이 고증에 관심을 보인다면 일어날 현상이 아니죠. 드라마 제작자들이 맨날 하는 변명이 사료가 부족하다라는데 다 헛소립니다. 시청자들도 고증엔 그닥 관심없고 갑옷 제작자들도 적어서 비싸고 구하기 힘드니 그냥 아무거나 싼걸 구해다 입히는거죠. 얼마전 방영된 정도전이나 징비록 같은 드라마는 그나마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이긴 합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 15.11.06 08: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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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혼자 흥분하신 분의 댓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갑옷에 대한 지식은 안보이고 남을 깍아내리는 모습만 보입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풀 플레이트 아머로 자주 표현됩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처럼 일부 기병들이 흉갑만 걸쳤어도 판금갑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에 구분을 위해서죠. 그리고 하네스라는것은 플레이트 아머의 정확한 명칭인게 아니라 기사의 복장을 통칭할때 하네스라는 표현을 쓰는겁니다. 한국으로 예를 들면 구군복이 있죠. 구군복이란 특정 종류의 관복을 칭하는게 아닌 “전립을 쓰고, 동달이를 입은 장표 위에 전대띠를 매고, 목화를 신고, 동개를 메고, 환도를 차고, 등채를 손에 드는 것”을 칭합니다. 그냥 복장만 칭한다면 융복이라고 칭하죠. 쉽게 말하면 플레이트 아머뿐만 아닌 체인메일을 입어도 하네스를 갖추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장하시는것과는 달리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체로 넘어져도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물론 못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특정한 상황에 빠져야 일어나는 일이죠. 예를 들면 100년 전쟁 당시 아쟁쿠르 전투와 크레시 전투때 중무장한 프랑스 귀족들과 기사들이 도륙당한 일인데 두 전투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가 엄청 왔다는것과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닥돌하다 과도한 밀집으로 자기들끼리 뒤엉키게 되었고 결국 진창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걸 영국군이 와서 학살했다는 점입니다. 진창에 빠지면 갑옷을 입은게 아니라 맨몸으로라도 움직이기 힘듭니다. | 15.11.06 08: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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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댓글로는 조선의 두정갑을 최초의 현대적 방탄조끼라고 주장하셨는데 두정갑은 애초에 몽골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게 된 갑옷이 발전한 형태입니다. 당연히 조선 이전엔 몽골이 사용했고, 역시 몽골의 영향을 받은 여진족도 사용합니다. 청나라군의 갑주의 형태가 조선의 두정갑과 매우 유사한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죠. 또 외국의 경우엔, 서유럽의 브리간딘(Brigandine), 러시아의 쿠야크(kuyak), 아랍의 챨타 하자르 마샤(Chihal'Ta Hazar Masha) 갑옷등이 두정갑의 형태를 가졌습니다. 두정갑은 조선만이 가진 특유의 갑옷형태가 아닌걸 알 수 있죠. 거기에 이 갑옷들은 물론 조선의 두정갑도 방탄조끼와는 거리가 멉니다. 방탄능력이 없으니까요. 흥선 대원군에 의해 만들어진 면제배갑이 방탄복입니다. 한국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것도 좋지만 남을 깍아내리며 너무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지면 그냥 단순히 국뽕입니다. | 15.11.06 08: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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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다 수공품이겠죠 저거 사람 일일히 입힐것도 아니고 몇개만든다고.. | 15.11.06 08: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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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ken/지금은 수작업 하는 분들이 천시 받지만 풍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기나 방어도구들을 만드는 기술을 예로 부터 중요시 되어왔던 기술들입니다. 다만 일제침략 시기에 장인들을 일본으로 일부는 끌려가고 대다수는 죽임을 당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장인들이 남아있을 경우 무기를 만들어 대항할수도 있고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으로요. | 15.11.06 09: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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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미국같은곳에 공장에서 찍어낸 플레이트아머세트가 650만원정도 하더라구요 | 15.11.06 09: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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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님들이 보는 예술성이란건 현대적인 기준인거고 왜 1차대전당시 총을 대한민국에선 안만드냐고 얘기 하셔야봐야.. | 15.11.06 10: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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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한 영향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선조들이 기술자들을 천시해서 문화가 말살된 것처럼 얘기하다니; 일뽕웹답네요. | 15.11.06 11: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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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간에 우리나라 장인들 일본에 끌려가거나 죽임당한것은 안배웠나 보네..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이보다 더 심할텐데.....일본에 장인들 많다고 찬양하고 있는 모습보니..에휴..알아서 잘 살겠지..~ | 15.11.06 11: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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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 없으면 맨날 일뽕웹이라고 몰아붙이는데, 한국에서 갑옷 기술이 서서이 사라지고 명맥이 끊겨버린건 오직 일제의 만행 때문만이 아닙니다. 인조 16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天啓) 7년) 5월 12일(정축) 2번째기사 갑옷을 많이 준비하도록 하교하다 상이 하교하기를, “예로부터 전쟁을 치르는 나라는 모두 갑옷과 병기의 마련에 힘썼는데, 근래 우리 나라의 장사(將士)들은 갑옷을 입으려 들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패하게 되는 원인이다. 이번에도 도처에서 패배한 것이나 이희건(李希健)이 화살을 맞고 죽은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갑주(甲胄)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군사를 조련할 때에 용사(勇士)를 정선하고 갑주를 많이 준비하여 공수(攻守)의 쓰임으로 삼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다. 그러니 비국으로 하여금 잘 헤아려 시행하게 하라.” 영조 58권, 19년(1743 계해 / 청 건륭(乾隆) 8년) 7월 13일(계사) 1번째기사 금군 별장과 육번 장군의 갑옷이 간혹 철제가 아니라 하여 금군 별장을 벌주다 임금이 태묘(太廟)에 가을의 전알(展謁)을 행하였다. 금군 별장(禁軍別將) 및 육번장(六番將)의 입은 갑옷이 간혹 쇠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여 병조 판서에게 명하여 금군 별장 이의풍(李義豐)에게 곤형을 베풀어 다스리게 하였다. 영조 65권, 23년(1747 정묘 / 청 건륭(乾隆) 12년) 7월 18일(병오) 1번째기사 태묘에 나아가 전알하고 귀로에 착용이 다른 금군 별장 조덕중을 곤장을 치다 임금이 태묘(太廟)에 나아가 전알(展謁)하였다. 대궐로 돌아올 때에 홍화문(弘化門)에 나아가 금군 별장(禁軍別將) 조덕중(趙德中)을 잡아들여 곤장을 치게 하였는데, 착용한 갑옷에 덮개만 있고 쇠로 댄 부분이 없어 다른 군사들이 착용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인조실록과 영조실록에서도 기록되었듯 장수들조차 갑옷 입는걸 싫어해서 꼼수를 쓰거나 아예 입지조차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위의 인조실록에서 인조가 이괄의 난을 회상하며 발언한것인데 이희건은 전장에서 조차 갑주를 입지 않아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영조실록의 두 기록은 일반 장수도 아닌 금군 별장들이 두정갑의 특성을 이용해 꼼수를 부리다 곤장을 맞은것을 기록한 것인데, 금군 별장이라는 것은 국왕의 친위대인 금군을 통솔하는 무관직으로 종2품의 고위직이였습니다. 금군 별장은 친병을 실제로 통솔하는 중요한 자리였기 때문에, 각 군문의 중군(中軍), 평안도병마, 통제사 등을 역임한 자 중에서 포도대장, 각 영문의 대장이 합의하여 천거하면 국왕이 이를 임명할 정도로 각별히 신경을 써서 임명되는 자리였습니다. 17~18세기처럼 아직 갑옷이 전장에서 완전히 무력하지 않고 꽤나 중요했던 시절조차 갑옷을 입기도 귀찮아하고 천시하는 풍조가 퍼져있던 조선에서 갑옷을 만드는 장인들을 극진히 대우해줬을것 같나요? | 15.11.06 12: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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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포인트를 잘못 짚으시는데 현대 일본에 갑옷장인 많으니 무조건 최고다가 아닙니다만? 뭘 보고 찬양했다고 하시는지? 있는 그대로 말한겁니다. 현재 한국에서 장인들을 우대합니까? 진심 그렇게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볼까요? 현대 한국의 각궁 장인들은 궁술협회 때문에 각궁을 일정한 가격이상 받고 팔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각궁 하나 만들어봐야 재료비밖에 안나온다고 합니다. 무형문화재면 뭐합니까? 이름뿐이고 대우를 받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하는데요. 그리고 임란때 장인들이 끌려가서 무참히 도륙된것처럼 왜곡하시는데 전문 기술을 가진 장인들, 특히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가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잘만 살았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남아있는데요? 계속 교과서 운운하시는데 어느 교과서를 얘기하시는지? | 15.11.06 12: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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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올 국정교과서요 | 15.11.06 12: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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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란이 아닌 일제시대를 이야기하시는 것이라면 이때는 민족 문화 말살을 목적으로 장인들을 끌고 간게 아니라 일본이 전쟁중이니 기술자들이 한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였기 때문에 강제로 끌고간겁니다. 문화말살 정책도, 일부러 죽이려고 데려간것도 아닌 단순히 수탈을 하면서 생긴 일이죠. | 15.11.06 1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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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한국사람 일본에 끌고 가서 좋은 대우해줬으니 괜찮데..지금도 재일동포 대우 못받고 있는데....에휴..그냥 늬 생각대로 잘살어..~ | 15.11.06 1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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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난독증이신듯 하니 더이상 말을 않겠습니다. | 15.11.06 13: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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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랑 우리랑 똑같은 조건이라고는 생각 안하는데.. | 15.11.06 13: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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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가 자주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발전을 할 만한 배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뒤쳐진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맥이 끊어지고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국민들 스스로가 전통을 부정하고 짓밟으면서 지나온 역사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좀 더 우리것을 소중히여기고 가꿔나가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하네요.. | 15.11.06 1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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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이 갑옷 싫어한건 화약무기 뿜뿜 하고 다니다보니 그런거 아닌가요? 걸리적거리잖아요. 물론 없는 것보단 있으면 어느정도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그러니 높으신 분들은 갑옷 입으라고 빼애액) 현장에서 보기엔 단점이 더 많았나보죠. | 15.11.06 13: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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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백년 동안 화력덕후질 하다 보면 갑옷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그 맥이 끊어질 수도 있는거죠.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고 없어져서 아쉽다 하는 건 지금 생각이고, 당시 관점에서 보면 무기는 실용적인 가치만 있으면 그만 아닌가요. 옆나라도 실제로 쓰기 위해서라기보단 과시적인 목적으로 만들었고 그게 이어져온 거잖아요. | 15.11.06 13: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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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gglypuff// 전쟁을 밥먹듯이 하던 유럽에서도 갑옷은 19세기까지도 꾸준히 쓰였습니다. 조선이 아무리 화력덕후라지만 성능면에서 서양만큼 화기의 위력이 발단한것도 아니였죠. 서양에선 ㅁㅁ식 총을 사용할때 까지도 조선은 여전히 화승총을 사용했으니까요. 신미양요때 미 해병대한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또 총이 기본무장으로 채용되서 널리 쓰인지 오래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많은 나라에 여러 중기병 병과가 있었고 프랑스는 보불전쟁때는 물론 심지어는 1차대전 초기까지 판갑을 입은 중기병들을 운용했습니다. 물론 1차대전때은 참호전이 주를 이루었고 기관총의 등장으로 서부전선에서는 기병은 척후용으로만 쓰이면서 나중엔 중기병도 사라진건 사실이죠. 다만 갑옷은 총탄만을 막으라고 입히는게 아니라 창칼이라도 막으라고 입히는것이니 안입는것보다 나은게 사실이고 그래서 총이 전장의 주력이 된 시대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갑옷을 계속 사용한겁니다. | 15.11.06 1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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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뷰쥬// 이해를 전혀 못하시나본데, 두정갑은 현대의 방탄복처럼 방탄판을 넣었다 뺏다 할 수 있는 갑옷이 아닙니다. 만드때부터 철판 조각들을 두정으로 박아 고정시킨 갑옷이 두정갑인데 위의 사례는 갑옷을 만들때부터 철판 자체를 박아넣지 않고 두정만 박아 눈속임을 한것이고 그로 인해 곤장까지 맞으며 벌을 받은겁니다. 현대 군인들이 귀찮아서 방탄판 빼놓는것 만큼 별것 아닌 일이라면 왜 곤형에 처합니까? 그리고 위의 사례는 금군 별장입니다. 왕의 친위대장이에요. 이미 적어놓았듯 금군 별장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한번도 아니고1743년과1747년 두번에 걸쳐 두명의 금군 별장이 꼼수를 부리다 곤형을 받았는데 이게 가벼운 일로 보입니까? | 15.11.06 1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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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상대에 맞춰서 갖추면 되는거죠. 조선 주변의 적들이 어떤 무장을 갖추었느냐가 중요하지 조선조 대부분의 시간동안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었던 지구 반대편 사례를 들고와서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 15.11.06 14: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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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 경호실장이 2번이나 방탄복에서 철판빼놓고 가라로 운영하다가 걸려서 징계먹은거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어차피 갑옷으로는 총을 못막으니 그냥 뺀거네 하는 얘기는 왜나오나요? 애시당초 조총떄문에 갑옷이 필요 없었으면 진즉에 갑옷을 제식에서 제외했으며, 그래서 쓰지도 않는 두정갑에서 철판뺐다고 금군 별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곤장을 맞을일또한 없었겠지 | 15.11.06 15: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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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갑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시죠? 아니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시는거 아닙니까? 그 많은 철판 조각들을 훈련때마다 그걸 하나하나 뽑았다 다시 박아넣는다고요? 전문 서적 같은건 읽으셨다고는 기대도 안하지만 요즘 세상엔 유튜브만 들어가도 두정갑을 어떻게 만드는지 장인이 직접 만드는 영상도 있는데 찾아보는게 그리 힘들었습니까? 여기서 이렇게 재밌는 댓글만 남기실게 아니라 개그맨 오디션 한번 나가보시죠? 그리고 더욱이 번거롭고 쉽고를 떠나 방호력을 상실한 갑옷을 눈속임으로 입고 다니던 금군 별장들이 왜 처벌받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듯 하네요? 제대로 갑옷 입으라는걸 안따르니까 처벌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인조 영조때 총이 일반화 된게 사실입니다만 제가 써놓은건 다 읽어보기는 커녕 그냥 정신승리만 하는 중이시네요. 이미 써놨듯 화승총이 아니라 ㅁㅁ식 총이 사용될 때 조차도 세계 여러곳, 여러 병과에서 여전히 사용되던게 갑옷이라는 물건인데 그 생각은 못합니까? 그리고 인조실록은 인조가 당시 풍조와 장수들을 비판하며 갑옷의 중요성을 직접 피력하는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읽어보시죠? 인조 16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天啓) 7년) 5월 12일(정축) 2번째기사 갑옷을 많이 준비하도록 하교하다 상이 하교하기를, “예 로부터 전쟁을 치르는 나라는 모두 갑옷과 병기의 마련에 힘썼는데, 근래 우리 나라의 장사(將士)들은 갑옷을 입으려 들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패하게 되는 원인이다. 이번에도 도처에서 패배한 것이나 이희건(李希健)이 화살을 맞고 죽은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갑주(甲胄)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군사를 조련할 때에 용사(勇士)를 정선하고 갑주를 많이 준비하여 공수(攻守)의 쓰임으로 삼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다. 그러니 비국으로 하여금 잘 헤아려 시행하게 하라.” 1627년 5월이면 이미 정묘호란까지 치룬 이후입니다. 이괄의 난, 정묘호란 같이 큰 전투들이 있던 때에도 갑옷을 입지않고 싸웠다고 왕이 직접 언급하는데 뭐가 더 필요하신지? 그리고 계속 총 총 거리시길래 얘기하는건데 그럼 임란때 조총을 널리 쓰던 일본군은 갑옷을 안입었답니까? 그리고 정묘호란, 병자호란때만 봐도 조선군이 이미 총으로 무장했었죠. 그럼 청나라 팔기군은 바보라서 그때까지도 갑옷을 입고 싸웠고 그런 바보들이 쌍령 전투에서 몇백에서 많아봐야 몇천의 기병으로 4만명의 조선군이 와해시킨줄 아시나요? 물론 지휘력이 개판이였고 화약이 터지는등 사고의 연속이였지만 정예 앞에선 총만이 능사가 아니였다는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데요. | 15.11.06 16: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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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공방은 당사자들보다 그걸 읽는 사람의 판단력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00분토론 보는듯한 암걸리는 몇몇 패널들에 달린 추천들.. 안타깝군요. | 15.11.06 16: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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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맥락이 갑옷을 천시했다고도 볼 수 있으나, 군기가 빠져있는걸로 해석될 수 도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만. 결국 그 시절의 상황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문서 내에서 '군인들이 갑옷을 경시하여 입지 않았다' 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 해석은 각자 나름이죠. 서로 싸우실 필요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그 시기가 인조때라는것은 제가 봤을땐 군기가 빠져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뭐 선조도 그렇다지만 저는 인조때가 조선 역사상 가장 개판이라고 보거든요. | 15.11.06 16: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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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미야♡쇼코//갑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여 제제를 받았다는것 자체가 갑옷을 중요시 여긴거 아닌가요? 그리고 말씀처럼 높은 직위를 가진 관직들은.. 예나 지금이나... 훈련할때 무겁게 하고 다니길 싫어하죠;; 아랫것들은 대체로 잘 입고 다니라 시키죠.. 현대군이나 옛군이나 비슷할 거라 생각됩니다. 또한 현대군도 마찬가지 고위직들은 훈련참가도 잘 안하고 장구류 착용은 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용 물품 개발에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부 군납비리 문제가 불거지고 있긴 하지만 이건 예외로 하고 실 예로 아직 남아있는 각궁 및 화살 제작 업체의 경우 상황이 딱히 좋진 않지만 명맥 유지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으로 징용되었던 장인들의 경우 잡혀간 시일이 길고 역사를 보아도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좋지 않아 대다수가 남아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대우 한가지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힘든것 같습니다. | 15.11.06 17: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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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dark// 제가 위에서 이미 써놨듯 갑옷을 입는게 17, 18세기에도 아주 당연하고 중요한것이여서 왕들까지 강조를 거듭 했지만 일선에선 무겁고 불편하다 하여 안입는 풍조가 있었다는것을 썼을 뿐입니다. 그리고 훈련만이 문제가 아니라 실전에서도 갑옷 안입고 싸우다 죽었다고 인조가 직접 언급하는데 왜 계속 훈련만 강조하시나요. 그리고 이건 장수들만 꼼수부리던것도 아닙니다. 갑옷 외에도 환도의 길이가 갈수록 짧아졌다가 임란을 거치면서 다시 길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짧아지죠. 그냥 짧아진게 아니라 칼을 아예 부러뜨리고 다녔다는 엽기적인 기록도 있고요. 또 흥선 대원군때는 방탄복이라고 기껏 면제배갑 만들어서 병사들 입으라고 보급했더니 덥다고 안입기도 했습니다. 신미양요의 기록사진을 보면 전사한 조선군중 면제배갑 안입은 시신들이 많은걸 확인할 수 있죠. 거기에 어재연 장군도 총검에 찔려 전사한걸 보면 어재연 장군도 갑옷은 입지 않은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건 갑옷을 특정지어 천시하는게 아니라 그냥 군기가 문란하고 문보다 무가 덜 중요시 되다보니 나온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 15.11.06 18: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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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흐름을 보니 누구는 리퍼런스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누구는 그냥 아몰랑! 빼액! 만 시전하면서 지 말만 맞다고 우기는게 보이는듯 | 15.11.06 20: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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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들이 아웅다웅하다 말아먹는거 반복한 나란데 뭔 자부심을 갖고 실드를 칠라고 하나 장인들 하등한 취급한건 확실한건데 | 15.11.06 2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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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갑옷무거워서 벗고다니 사례가 없는줄 아나... | 15.11.06 21: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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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군사사쪽 일을 하고 있고 요새 작업하는 쪽인 두정갑의 방호재의 결구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해보자면... 두정갑은 철찰 혹은 피찰 방호재가 두정으로 단벌 갑옷에 직접박혀 있는 것과 내피와 외피로 분리가 되어 외피에는 장식 용도로만 두정을 박고 내피에 철찰이나 피찰로 방호재를 삽입한 두 종류로 나뉩니다. 전자는 당연히 방호재를 분리할 수 없지만 후자는 내피를 입지 않으면 의장용 갑옷으로만 기능하므로 당연히 방호재가 귀찮아서 빼놓고 다닐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후자의 갑옷이 남아있는 유물로는 대략 두 배정도로 더 많습니다. 조선의 두정갑 역시 20세기 초에 가까워질 수록 더 화려해지며 장인들의 살림살이 -,.-;; 역시 더 나아집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훈련시에 귀찮고 무거워서 내피를 빼놓을지언정 외피의 화려함만은 더 선호되어지기 때문이죠. 이것은 환도나 궁시의 동개 등에서도 보이는 현상입니다. 또 구한말이 되면 외국으로부터의 선호도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 15.11.06 23: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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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야 다양한 기구들을 훨씬 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서양권은 일부 제외하고는 리인액터들이 여력만 있다면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옛날 무구 만들 때 옛날 방식만 고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죠. | 15.11.07 00: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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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뷰쥬// 진짜 재밌는 분이시네요. 윗분이 설명하신 두 종류의 두정갑중 후자는 소위 말하는 의장용 두정갑인데요? 화려한 의장용 두정갑이 유물로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이 갑옷들이 실전용이 아니라 조선 후기/말기에 외국에 선물/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품이였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졌기에 의장용 갑옷 유물들은 훨씬 깨끗하게 보존되어있죠. 찢어지거나 색이 바래지 않는 등등. 글을 제대로 읽으실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한번 써드립니다. 영조 65권, 23년(1747 정묘 / 청 건륭(乾隆) 12년) 7월 18일(병오) 1번째기사 태묘에 나아가 전알하고 귀로에 착용이 다른 금군 별장 조덕중을 곤장을 치다 임금이 태묘(太廟)에 나아가 전알(展謁)하였다. 대궐로 돌아올 때에 홍화문(弘化門)에 나아가 금군 별장(禁軍別將) 조덕중(趙德中)을 잡아들여 곤장을 치게 하였는데, 착용한 갑옷에 덮개만 있고 쇠로 댄 부분이 없어 다른 군사들이 착용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번 다시 읽어보시죠. 착용한 갑옷에 덮개만 있고 쇠로 댄 부분이 없어 "다른 군사들이 착용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댓글을 열심히 남기시는걸 보면 글자는 읽을 수 있는가본데 혹시 독해력이 딸리시나요? 개그맨 오디션은 때려치고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니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 상황이 의장용 갑주만 입어도 괜찮았던 상황이면 영조가 금군 별장을 벌하지도 않았고 그가 입은 갑옷이 다른 이들이 입은 갑옷과 달랐다고 굳이 기록할 이유도 없습니다. 전에는 훈련때마다 두정 하나하나 다 꼈다 뺏다 한다고 주장하더니 아니라는걸 알게되니까 아무 반박도 못하다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의장용 두정갑을 언급하니 이때다 싶으셨나요? ㅎㅎ | 15.11.07 06: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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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를 깍아내리네 뭐네 빼애애애액~! 빼애애애액~! 거리시는데 님이 처음 단 댓글이나 읽어보시죠? 더러운 말투로 시비는 자기가 먼저 걸어놓고 비꼼 당하니까 부들부들 떨리십니까? 그런 멘탈로 무슨 키배를 뜨자고 시비를 걸어요? | 15.11.07 06: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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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까지도 문을 중요시하고 무를 천시한게 계속 내려오는데........병장기 만드는 사람들을 귀하게 대우해줬을까? | 15.11.07 10: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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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피, 내피로 나뉜 갑옷도 의장용 식양갑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내피와 외피를 함께 입으면 전투용이 되고 외피만 입으면 의장용이 되는 것이죠. 사실 국내에 방호재가 달리지 않은 조선후기-구한말 갑옷들은 내피가 남아있는게 한 두 점 정도만 확인되는지라 그동안은 방호재가 없으면 무조건 의장용이라고 여겼는데 최신 연구에서는 해외유물들에서는 이런 갑옷들은 거의 여지없이 내피도 함께 세트로 소장되어 있고 국내의 방호재 없는 두정갑들과 제작기법과 결속구 등이 동일하여 최근에는 기본적으로는 내외피가 한세트로 되어있어 실전에서는 방호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단, 어떤 연구에서는 내피에 쇄자갑도 있다라고 되어있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이 경우는 청나라의 면갑(두정갑)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화려한 두정갑 유물들이 선물용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독일의 쟁어콜렉션의 국내외 모두를 통틀어서도 최고급 갑옷에 속하는 두정갑들은 조선군대가 신식군대로 개편되면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군대물품들을 구입한 것입니다. 연구자로써 가장 아쉬운 것은 내외피 뿐만 아니라 다른 부속구들까지 완전히 한 세트로 갖추어진 유물들을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죠. 세트로 된 유물을 직접 보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상황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15.11.07 12: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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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부쥬 넌 졌어. 토론에서도 심리적으로도. 자료는 빈약하고 논리는 편협하며 동어반복 심한 문장까지... 이 정도 수준으로 싸움을 걸다니 ㅡㅡ | 15.11.08 1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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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미야님 고생 많으시네요. 싸움을 걸려면 정보라도 모아오고 싸우던가 상대방 주장도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 놈들이 아는척 하다가 짓밟히는거 구경하니 히어로 영화 보는것 같아서 통쾌하네요.적이 잔당 수준도 안되지만ㅋㅋ | 15.11.10 2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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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뷰뷰 불쌍하다 ㅋㅋㅋㅋ 진짜 위 댓글에 격한 공감. 빼애액조차 실패한... | 15.11.14 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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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실드쳐주느라 고생이 많네.. 애초에 조선 실더들 가운데 국뽕들이 많은데, 그들이 실드치는 조선의 모델이, 그들이 짱■라고 비하하는 기자가 만든 조선이었다는 건 알까? 이거 이야기해주면 빼애액 거리던데. 조선경국전에 다 나와있는 내용인데. 이성계조선 창시자가 그렇다는데 뭐 어쩌자는 건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계승이라는 의미에서 조선이라고 명명했는데. 조선을 무조건 비하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실드치는 건 더 문제다. 조선이 그렇게 국뽕질하다 망했거든. 궁금하면 소중화사상 찾아서 공부해라. | 15.11.22 08: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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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질이 아니라 중뽕질 하다가 망한거지 일뽕들 처럼. 일뽕들 100%전생이 중뽕들임. 한결같은 태극노사가 더 사람답다 ㅋㅋㅋㅋ 아 그리고 세금 저새끼는 확실히 일뽕이다 | 15.11.22 1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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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 일본침략에 인해 없어진 소실된 문화도 처지도 생각해야죠. 일본은 잠깐이지만50년 떵떵거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기에 우주급 국뽕에 빠져서 자위질 하는 부자들과 졸부,상인들이 많아서 그걸 돈주고 구매하고 장식할 여유라도 있었지만 당시 한국에 그렇게 살수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그리고 거진 친일파..) 그걸 같은선상에 놓고 보기엔 좀 어려운 점이 많죠. 중국조차도 전통공예중 잃어버린 기술들이 꽤 많다고 하던데. 나라를 잃게되면 많은걸 잃게됨. 그것도 수탈자들이 더욱이 탐욕스럽고 개걸스러울때는 나라잃고 글도 잃게 생겼는데 해방후는 극심으로 가난했고 전쟁도 터졌다. 살기위해 돈되는것에만 집중해서 경제성장 이룩하는데 주력하는데 과거문화뿐만 아니라 현재삶에서도 많은걸 잃었다는건 다들 아는 사실이지 않나? 일본이 만약 한국같은 처지였다면 얼마나 유물들이 남고 만들어졌을까? 물론 이대로 좋다는건 아니지. 근데 님들이 돈내고 복원하세 하는것도 아니잖아요. 돈많은 꼰대들이 물건의 제값어치를 못알보는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된데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는걸 알았으면 해. 솔직히 한국이 근대화되어서 안정적인 발전을 해왔다면 어느정도 발전한틈에 국수주의 성향 유행이나 문화보전욕구가 들기 마련이야 그런 찬스가 없었던 거지. 결론은 앞만 보고 돈만되는 경제발전만 하다보니 잃은게 많다. 그이유는 일본이 한국문화를 천시하고 없애려고 까지 했다. 민족말살정책과 식민사관으로 자기비하적인 생각만 하게된 사람들이많다. 식민사관에 물든 돈벌 궁리만 하는 자들이 국내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자문화를 되돌아 보는 시각이 좁아들고 돌이켜 보기 힘들다. 일본이 심은 민족말살 정책과식민사관과 경제발전에 목을맨 결과가 지금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거겠죠. | 15.11.22 10: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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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소중화사상은 중뽕이긴 한데, 국뽕 일종 맞습니다. 중국이 망한 후 스스로 중국을 자처해서 소중화사상인 겁니다. 잘 알아보세요. 아무튼 국뽕도 위험한 겁니다. 일단 파시스트가 국뽕이죠. 게다가 역사적으로 국뽕에 심취해서 안망한 국가가 없습니다. 나치독일과 일제도 국뽕 때문에 망한 겁니다. 거의 종교 수준이었죠. 민족말살 정책도 알고 보면 '일제의 국뽕'(일뽕) 때문에 나온 겁니다. | 15.11.22 1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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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조선 초반의 '합리적인 중뽕'은 실드가 가능하지만, 중국이 없어진 이후의 중뽕은 국뽕화 되고 노답이 되어 실드가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그래서 국뽕은 조선을 망국으로 만든 주범이 됩니다. 선진문물을 전혀 받아들일 생각을 안해서 극도로 퇴보하죠. 오죽했으면 청나라를 통해 받게된 서양문물 서적들을 배척하지말고 재발견하자던 '힘도 없던' 실학자들이 아쉬워보이겠나요? | 15.11.22 1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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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 빨던 명이 쳐망하고 갈데는 없고 합체하는게 그거라면야 일뽕도 거진 마찬가진거 같은데 박근혜 동생이라던지. 일본 없어지면 소일화사상에 심취할것 같은 사람들. 국뽕이 아니라 외국에 환장하는거니 외뽕으로 봐야겠죠. 기본적으로는 정도에 따라서 강중약으로 나눠서 본국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어쨋건 님이 말씀하신대로 구일제나 독일같이 과한 국뽕은 안좋죠. | 15.11.22 1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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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명나라가 없었다면 조선은 망했으니 조상들의 심경은 이해합니다만.. 아, 그렇다고 해도 선조처럼 명나라를 띄워주고 이순신을 격하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명나라가 오히려 조선에 피해도 많이 끼쳤지만, 어쨌든 전략적으로 이순신 혼자로는 조선을 지키기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 15.11.22 11: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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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하자면, 현재의 중국이 전통문화를 많이 잃어버린 건 외세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화혁명 등으로 스스로 파괴한 겁니다. 홍위병 유명하잖아요? | 15.11.22 11: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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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일본 탓을 하는 건 심각한 문제 입니다. 오히려 일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일본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일본이 숙이게 만들어야 진정한 반일이죠. 물론, 일제의 잘못을 덮어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쨌든 일본정부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일본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나요? 현재의 반일들 주장은 전쟁 외에는 해결할 방도가 거의 없습니다. 소모적인 논쟁만 지속시킬 뿐입니다. | 15.11.22 1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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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잃어버릴게 굉장히 많습니다. 이사실이 어떻게 반일이 되고 일본에 의지하게 되는 의문이네요. 거기다 갑자기 아무상관없는 이순신도 은근슬쩍 넣어보고 도발하려는거 같은데 일뽕 맞죠? ㅋㅋㅋ 일뽕애들 태연하게 대화로 합시다 하면서 뒤로 살근살근 꼬시기 전법 주로 애용하긴 하죠. 되려 되도안되는 쉴드치다가 엎어져린 꼴인거 같은데. 더욱이 일본이 한국같은 처지였으면 한국보다 전통문화유지는 더 힘들었을거 같은데요. 상대적인 입장 고려를 해 봐야죠. 일본의 의해 피해와 식민의식등으로 한국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게 사실 가장 큰탓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왜 튀어나오는지 도 모르겠네요. 도통 모르겠어요. 하하 웃깁니다. 정말 | 15.11.22 19: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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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나 한국의 정책적인 문제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나라 문화는 일제 시대 때부터 시작되어 없어진 것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일제 시대가 끝나고서 바로 복원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후 한국 전쟁과 빈곤을 딛고 일어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문화적인 기반을 복원할 생각은 하지 못했지요. 여기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일제 때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기 시작한 건 상당히 최근에 와서입니다. 근 80년 이상을 소실된 채로 있었고 이제는 제대로 된 기록도 기술자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된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지원이 없다해도 이 정도로 소실되진 않았을 겁니다. | 15.11.23 0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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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vAm/ 일부 공감합니다. 35년간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복원할 수 없었던 건 아니죠. 근데, 오히려 미원(아지노모토)를 복원해내더군요?  | 15.11.23 07: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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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조선이 명나라에 사대한 이유 변호하는데 이순신 이야기 한 거 가지고 뭔 일뽕이 튀어나옵니까? 그럼, 이순신 격하하던 조선왕 선조도 일뽕인가요? 게다가 도산 안창호 선생도 남탓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는데 일뽕인가요? 일제가 잘못 많다고 분명 이야기했는데, 도대체 뭘 본 겁니까? 노답이군요. 당신같은 사람이 많아서 전쟁이 아니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대화가 통하면 전쟁따위를 할 필요가 없죠. | 15.11.23 07: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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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일본탓으로 돌리면 되니, 위정자들은 참 편하겠습니다. 친일파 정리가 전혀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자신들은 그러기 싫었는데 일제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 말하는데 뭔 정리가 되겠습니까? 오히려 어떤 의원은 독립군 때려잡던 특무 부모를 친일파 청산한답시고 독립운동가로 미화하기도 했죠. 어이가 없습니다. | 15.11.23 08: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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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위정자겠죠. 왜 쓸떼없는 얘기를 꺼내는지도 모르겠고 일본탓하면 안됩니다. 일본에 의지하면 안됩니다. 이러다 전쟁납니다 몰아가는지도 모르겠네요. 박근령 본인 이세요? 님 댓글 읽다가 뿜었습니다 그리고 아지노모토는 일본에 있는 거 잖아요. 그리고 위에 쓰신 분 말도 그렇고 님말대로 "다 일본탓"한건 아닌데요? 잘 읽어보세요. 그리고 확실하게 진짜 이렇게 된 장본인은 일본때문 맞습니다.일부 드립하시지 말구요. 사람이 치졸하게 뒤에서 혀 놀리지 맙시다. 일제의 수탈과 문화말살이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사실을 인정 안하려고 하니 답답하네요. 진짜 박근령인가? | 15.11.23 09: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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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일단 저는 위정자가 아닙니다. 정치와 전혀 관련없습니다. 제 말 뜻을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일본탓을 아예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모든 것을 일본탓으로 돌리니 해결이 안된다는 이야기죠.. 기본적인 어휘조차 님이 믿고싶은 뜻으로 해석하니 대화가 될리가 없습니다. 아지노모토 이야기는 미원이 아지노모토라서 이야기 꺼낸 겁니다. 일단 아지노모토가 뭔지나 보고 오시죠? | 15.11.23 1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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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치졸한 건 당신입니다. 인정할 건 쿨하게 인정해야 발전이 있는 겁니다. 일본 역사왜곡 보시죠? 쿨하지 못하니까 그런 치졸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라구요? 그런식으로 따지면 조선을 무지몽매한 국가로 만든 위정자들과, 또 그렇다고해서 그걸 일제에 팔아넘긴 매국노가 가장 큰 문제죠. | 15.11.23 1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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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글이나 윗분글 보시면 다 줄줄이 써져 있는데 님이 글을 안읽으시는거 아닌가요? 거기다 님은 하고싶은 얘기는 일본탓하지마라. 이거 아닌가요? 이렇게 된 가장큰 근본원인을 정확히 짚어서 얘기했는데 딴소리 하고 있는건 그쪽 아니냐구요. | 15.11.23 11: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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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지몽매하고 외뽕에 빨려들어가 있는 매국노들이 당신과 닮아서 그럽습니다. 박근령이요. | 15.11.23 11: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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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정리하자면 모든 문제는 '국뽕'에서 기인합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일제의 만행 역시 그들의 '국뽕'으로 벌어진 참극 입니다. 명심하세요. 국뽕은 결과적으로 나라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애국으로 포장된 깡패짓입니다. 스스로 고립해서 퇴보할뿐이죠. | 15.11.23 11: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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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이 일어난 데에 사회적인 경제적인으로 고려해서 얘기하는거지 반일이네 국뽕이네가 들어갈 말이 있나요? | 15.11.23 11: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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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그런식으로 따지면 제 주장에 중뽕이네, 일뽕이네, 매국노네 하는 여지가 있습니까? 저를 매도한 건 당신입니다. 기본적으로 일제를 부정하고있는 발언 입니다만? | 15.11.23 11: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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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이쯤하죠. 하지만 님이 말씀하시는 말에는 은근 비하적으로 들릴수도 있다는말을 하고 싶군요. 박근령처럼요. 그리고 뭐가 본심인지는 님만 알겠지만 그렇게 적으시면 말할려는 주제는 일본탓 하지마라로 정리됩니다. 윗분처럼 신사적으로 말씀하는것도 충분히 가능한일이고 저도 문화복원 뒷전에 밀려나 있는 이전현실만 지적했지만 윗분은 고쳐나간다고 까지 긍정적인 멘트까지 하셨습니다. | 15.11.23 1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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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저급한 인신공격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그런 발언이 나오는 겁니다. 마음을 좀 곱게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 15.11.23 11: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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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일제가 모두 잘못했으니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군요? 당신 주장대로며 친일파 정리는 왜 하는지 모르겠네요. | 15.11.23 11: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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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님한테 무슨 말을했길래 그렇게 거슬려서 비하적인 의도의 글을 쓰셨는지요? 개인적인 얘기가 되겠군요. 쪽지로 해결하죠. | 15.11.23 11: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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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근본적인 원인이였다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얘기를 해왔는데 "다 일본탓이라고 아닌데?" 같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시니 딴 의도를 품고 딴말하는거 아니냐고 의심사는건 당연한거죠. | 15.11.23 11: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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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쪽지로 보냈습니다. | 15.11.23 1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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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자존심 싸움은.. 여전하구만 루리웹은.. | 15.11.24 0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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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루리웹 사람들은 별걸 다가지고 자존심 세우고 싸우더라...ㅉㅉ | 15.11.24 1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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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보다보니 논리의 비약이 있는것도 맞고, 좀 과장된면도 있긴하지만 조선시대 때 기술자들을 천시했다는건 사실입니다. 단지 일제 시대때의 유실로만 탓하기에는 너무 편중된 생각인거 같네요. | 15.11.24 18: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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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런거 찍어도 뭐라 안하나요?
15.11.0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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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본이후로 박물관 가본적이 없어서 무식한 발언이면 죄송합니다 | 15.11.05 0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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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플래쉬로 인해서 열화가 일어난다던지 훼손이 일어나지 않는 물건들은 사진을 찍는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 15.11.05 1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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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마다 정책이 달라요. 걱정마시길 :-) | 15.11.05 18: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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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개는 위키백과에서도 본걸로 기억하는데,, | 15.11.05 22: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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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생각들어서리 ㅎㅎ | 15.11.06 0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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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는 플래시만 아니면 사진 찍어도 되는 박물관 많더라구요. | 15.11.06 06: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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