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뵙습니다.
전의 것이 호무라의 성장과 그 사랑의 양면성을 다뤘다면, 이번엔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마도카와 호무라의 관계가 주제입니다. 본래는 그것에 서너 문단 정도로 가볍게 추가할 작정이었는데 쓰다 보니 조금 길어지는 바람에 그냥 따로 빼서 작성하게 된 글인지라, 거기서 드러냈던 저의 해석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읽고 오신다면 (클릭) 혹시 내용 전개가 더 쉽게 연결되지실지도 모르겠네요. ARTER님의 '호무라의 세계에 미래가 있는가?' (클릭) 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래는 마도카/호무라의 관계를 다루는 것에서 논의를 더욱 확장시켜 이 둘이 실행한 세계 개변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그 정당성에 대해서도 쓸 생각이었지만 ARTER님이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꼼꼼하게 써주셨습니다.
역시 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살짝 손질한 것인지라 편의상 문어체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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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전제로서 '꽃밭에서 호무라가 들었던 마도카의 고백'이 과연 그녀의 진심인가 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듣자 하니 그것이 정말 마도카의 본심이었는지 아니면 호무라의 무의식적인 소망이 반영된 거짓이었는지에 대해 은근히 의견이 갈리는 것 같은데, 그중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지에 따라 작품의 해석과 감상 또한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마도카의 이 고백에 이상한 스위치가 들어가버린 호무라가 그 본심을 이뤄주겠답시고 자길 위해 차려진 18첩 밥상을 예술적으로 뒤집어 버리고 하느님 납치세뇌감금의 중범죄 3연타를 저지르는 것이 신극의 부제 '반역'의 참뜻이니까. 상영회 당시 별 거 아닌 장면인 것 같은데 연출에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가 있나 싶어서 의아했는데 나중에 되짚어보니 이 부분이 차후 전개를 결정하는 최대 복선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신극에서 가짜 마도카는 등장하지 않는다. 호무라는 단순히 소꿉놀이를 위한 무대를 준비했을 뿐 거기에 등장하는 연기자는 전원 본인이며, 큐베의 간섭 차단 필드부터가 원환의 이치, 즉 '진짜 카나메 마도카'를 꾀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TVA 때의 각오를 잊어버린 것은 사실이니 우로부치의 표현대로 '호무라에 의해 형편이 좋지 않은 기억이 빠져 있는 마도카'라고 해도 무리는 없겠지만, 그것을 '호무라가 마도카의 의식에 손을 대서 자신의 소망대로 따르게 했다'고 말하는 건 조금 빗나간 이야기일 터. 마도카와 똑같이 기억을 잃은 상태였던 마미와 비교해봐도, 호무라에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결계 안 인물의 의식 조작이 가능했다면 그녀와 그렇게 요란하게 총질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유우키 아오이의 '베스트 오브 마도카' 발언 또한 호무라에 의한 의식 개조라기보다는 행복한 환경의 정돈, 즉 쿄코가 제대로 된 의식주의 충족과 무엇보다 사야카의 존재 덕에 마음에 여유가 생겨 TVA에서의 난폭한 언행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호무라가 마도카의 대답에 그토록 동요했던 것도, 그 카나메 마도카가 진짜라는 반증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도카와 헤어지고 바로 쿄코에게 전화를 하는 것을 봤을 때 호무라는 이미 이 시점에서 결계를 만든 마녀가 자신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이 세계에 마도카는 존재하지 않는다→마도카가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건 마도카를 기억하고 있는 나밖에 없다→즉 이 마도카는 내가 만들어낸 가짜이며 내가 예상하는 말을 할 것이다]라고 추측하고 있던 것 같은데, 마도카가 TVA에선 자길 붙잡으며 오열하던 호무라를 내버려 두고 사야카를 찾으러 갔던 공원에서 '호무라쨩이 괴로워하고 있을 때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나도 괴로워.' 라며 그 때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던 것도 그 추측에 근거를 더하지 않았을까. "나는 얼마나 바보같은 착각을..." 이라는 대사를 보건대 아마 "괜찮아,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모두와 함께니까 외롭지 않아." 같은 대답을 예상하고 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마도카가 호무라의 상상과 정반대의 대답, 그것도 그 때까지 새까맣게 잊고 있던 TVA 1화에서의 문답과 일맥상통하는 대답을 해버리는 바람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 된 것과 동시에 이 마도카는 진짜라고 확신한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호무라의 반역에 대해 100% 그녀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길게 늘어놓을 필요없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 그러나 그 결행 이유가 '카나메 마도카의 행복을 위해서' 라는 것은 눈 여겨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언제까지나 마도카의 편일 것 같던 호무라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납득할 수 있으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 전부 이 부분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극의 장점 중 하나로 큐베가 마녀 시스템에 흥미를 보이는 등 TVA에서부터 깔려 있던 불안 요소를 알뜰하게 써먹었다는 것을 드는데, 개인적으로는 호무라와 마도카 사이에 있는 불협화음도 그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두 사람의 마음이 맞물리지 않은 게 하루아침에 시작된 일은 아니었다. 루프 세계에서 호무라는 마도카를 구하기 위해 마법소녀가 되고자 하는 마도카의 의지를 짓밟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무라가 마도카를 구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해 요소는 큐베도 사야카도 마미도 발푸르기스의 밤도 아닌 바로 카나메 마도카 자신이었으며, 종반 마도카가 원환의 이치로 승화함으로서 결국 마도카를 평범한 생활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는 호무라의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저 그 상황에서 더 이상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호무라는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했을 뿐 누구보다도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 모두와 헤어지는 결말은 그녀에게 있어 영혼이 썩을 정도의 응어리로 남았던 거겠지. 호무라가 "그런 용기 나에게는 없어." 라는 마도카의 말에 그토록 충격받았던 것은 그것이 '진짜 카나메 마도카'의 증명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로서는 도저히 삭일 수 없었던 잔인한 현실에 대해 '그것은 역시 끔찍한 일이었다' 라는 증명이기도 했던 탓이었다.
< 발푸르기스의 밤을 정화시켜 주면서 마도카는 더 이상 누구도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호무라에게 그 엔딩은 절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아닐까? >
호무라가 반역하게 된 근간은 확실히 정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순수한 애정 혹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이겠지만, 마도카 없는 세상에서의 외로움, 큐베에게 원환의 이치에 대해 말해버렸다는 책임감 ( by 신보 : 출처는 키라마기. 호무라가 거기서 죽어도 큐베는 다른 마법소녀로 실험을 계속했을 테고, 결국 언젠가 원환의 이치는 정복당할 것이기에 호무라는 악마가 되는 것으로 천기누설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고 ) , 마도카를 희생하게 만든 주제에 그녀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세상에 대한 저주 등 여러 가지 섬세한 감정 또한 함께 뒤섞여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고 싶은 것은 '마도카가 그렇게 된 것은 내가 마도카를 구하기는 커녕 루프를 반복하며 인과를 모아버렸기 때문이다' 라는 죄의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호무릴리의 안에서 호무라를 둘러싸고 있던 심상 풍경이 1주차도 2주차도 개변 후의 세계도 아니고 하필 3주차였던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그녀에게 3주차는 어떤 의미를 가진 시간축이었던가. 자신같은 것보다 몇 배는 더 살아주었으면 했던 사람 대신 살아나 바보같은 나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끝에는 누구보다 지키고 싶었던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여버린, 아케미 호무라 최대최악의 트라우마가 아닌가.
< 마미의 허벅지를 쏠 때도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호무라가 마도카를 죽일 때의 기분 >
나는 이러한 죄책감을 연출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주차에서의 마도카 사살은 지금의 호무라를 만든 결정적인 계기이다. 그녀의 행동 원리를 철두철미하게 지배하고 있는 저주. 그 때 호무라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마도카에게서 목숨을 받아 살아났지만, 큐베에게 속기 전의 나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완수하기는 커녕 그녀를 몇 번이고 죽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인과까지 모아주면서 끝내는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쿨호무가 마도카의 시체를 껴안은 안경호무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이 마치 마도카의 목숨으로 살아난 주제에 마도카를 구하기는 커녕 미래영겁 우주 한 구석에 개념으로 고정시켜 버릴 거였다면 차라리 그 때 내가 죽어버렸어야 했다고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호무라가 들고 있는 총이 하필 3주차에서 마도카를 죽였던 것과 똑같은 종류인 것을 보라. 호무라에게 있어 마도카를 죽이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한 고통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려는 호무라를 말리려는 마도카의 마음이 그 때의 상처투성이 팔로 나타났던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것이 과연 '마도카는 여신이 되어 이렇게나 힘들어하고 있다' 는 호무라 안의 이미지인지 '내가 마도카를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는 죄책감의 구현인지, 그것도 아니면 실제로 마도카가 수행하는 구제의 업무는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상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녀가 악마화를 결의하는 데에는 충분했겠지. 더 이상 마도카가 희생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 물론 마도카는 오히려 무리한 짐을 지워버린 자기가 호무라에게 미안했으면 미안했지 호무라가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겠지만, 호무라의 입장에서는 또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애초에 마도카에게 그런 선택사항을 준비해 주었던 것이 그녀였던 만큼 무슨 죄를 짊어져서라도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과연 마도카가 개념으로서의 운명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느냐 아니냐는 상관없다. 그녀가 신으로서 조금이라도 괴로워했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호무라의 죄가 된다. 자신의 탓으로 소중한 친구가 영원멸겁 고통받는데 정작 자기는 그 친구에게 구원받고 편해진다든가 호무라는 그런 거 절대로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무라쨩...무섭지 않아?"
"응...괜찮아. 나는 이제, 망설이거나 하지 않아."
호무라의 독백을 봤을 때, 이 장면은 그녀가 최종적으로 반역을 결정한 부분일 공산이 높다.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반드시 마도카를 구해내겠다고 맹세했던 그 3주차의 풍경 안에서 호무라는 '어떤 모습으로 전락하더라도 분명 괜찮다'고 말하며 그 때의 맹세를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일견 마도카가 호무라를 구원해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도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호무라를 더더욱 몰아붙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3주차의 반복이었으며, 호무릴리의 심상세계를 3주차로 설정한 것은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굴러갈지 넌지시 일러주는 명연출이었다. 반역 코믹스에서의 모놀로그+마수 세계 호무라 연출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쪽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도 그 탓이다. 결국 언제나 호무라를 그렇게나 막 나가게 만드는 트리거를 당기는 것은 비록 고의는 아닐지언정 언제나 마도카인 것이다. 3주차에서도, 나이트메어 세계에서의 꽃밭에서도, 그리고 호무릴리의 안에서도.
물론 그렇다고 마도카가 호무라를 아예 배려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애초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써서라도 모든 마법소녀를 구원하겠다고 마음 먹은 데에는 마법소녀 시스템의 불합리함에 대한 충격 외에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호무라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 ( by 신보 ) . 그러나 마도카는 그랬던 것치고는 호무라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소원을 빌기 직전 마도카는 "절대로 호무라쨩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을 테니까." 라고 말했지만, 마지막으로 호무라에게 남겨졌던 것은 그녀가 무엇보다도 원하지 않았을 세계, 카나메 마도카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소멸된 세계가 아니었던가. '향후 원환의 이치가 고장나지 않는다',' 아케미 호무라는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는다' 라는 전제 하에서 다루는 대상을 마도카-호무라의 관계로만 한정한다면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의외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렇게 호무라가 실제로 마도카에게 피해 ( 인과 축적 ) 를 끼친 것이 있었던 이상 그것을 보상하려는 호무라의 반역은 그저 단순한 집착이나 독선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마도카 또한 아무리 악의는 없었다지만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시점에서 단순한 피해자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호무라에게 마도카를 신으로 만든 책임이 있다면, 마도카에게도 호무라를 악마로 만든 책임이 있다.
본작을 꿰뚫는 중요 키워드 중의 하나로 '독선'이 있다. 자신의 욕망이나 상대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실행하는 이것은 분명 선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날로 되돌아와 자기 자신과 나아가서는 그 주변마저 파멸시킨다.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불행하게만 만들고 말았던 쿄코의 독선. 사야카를 배려하려고 했지만 거꾸로 그녀를 몰아붙이는 계기가 되고 말았던 히토미의 독선.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고집을 부리다 결국 그녀 자신을 파멸시킨 사야카의 독선 등등. 그런 면에서 보면 마도카☆마기카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영국 속담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
"내 소원이 가족을 파괴했어. 타인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멋대로 소원을 빈 탓에 결국 모두 불행해졌어."
< 10화에서의 그 소원은 호무라가 난생 처음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 장면이며 마도카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였지만
결과적으론 한 번 죽고 끝날 운명이었을 마도카를 인과의 굴레에 옭아매게 되어버렸다.
열등감을 느끼기 싫어서 빚을 갚겠다는 건 그만두라던 그 충고는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
마도카-호무라의 관계도 그런 맥락에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둘을 보고 있자면 오 헨리의 단편 중 '크리스마스 선물The Gift of Magi' 이라는 우화가 떠오르는데, 이것은 크리스마스 날 가난한 부부가 상대에게 각각 머리 장식과 시계줄을 사주고 싶어서 자신의 회중시계와 머리카락을 팔아 선물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로, 엇갈린 독선의 호의가 어떤 결말을 낳는지 그려낸 작품이다. 애초에 서로 다른 자아를 갖고 있는 타인인 이상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의견차가 전혀 없을 수는 없는 일, 그리하여 우애에 금이 가게 되더라도 보통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그 간극을 메꿔나가는 법이지만 이 둘에게는 그럴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서로가 생각하는 행복의 모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탓에 자연스럽게 본인이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고 있지 않든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강요하는 꼴이 되는데,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 비해 둘 다 상대가 정말로 뭘 원하고 있는지는 감도 못 잡고 있으니 인류보완계획 같은 아이디어가 왜 나왔는지 알겠다. 상대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보겠다고 싸우는 것을 우주 스케일로 하고 있는 느낌이다.
둘 다 상대의 마음 속에서 자신의 비중을 과소평가한 채 행동하고 있다는 것도 상당히 귀찮다. 이런 점도 짝패끼리 꼭 닮았는데, 루프 세계 내내 마도카에게 있어서 '한 달 전에 전학 온 클래스 메이트' 이상이 될 수 없었던 탓에 '나는 마도카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내가 불행해지면 마도카도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자각이 전혀 없는 호무라도 호무라지만 애초에 마도카도 그런 소원을 빌었다는 것부터가 자신이 호무라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니 그야 뭐, 보통 동성 친구가 자기한테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는 상상도 못 하는 데다가, 모든 시간축을 알게 된 마도카에게는 정말로 '아주 잠깐 동안'의 이별이었을 테고 호무라도 이제 그만 자신의 인생을 살아줬으면 한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곤란하게도 호무라가 자기 내면 세계에 마도카의 신상을 새겨놓고 그 발치에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매달리는 아이였으니.
마도카가 현세에 남겨두고 왔다는 미련은 '괜히 신이 되기로 했다. 이런 소원을 빈 것이 후회스럽다' 라기 보다는 '소원의 대가이니 존재가 지워지는 것 정도는 각오했고 이것도 나에게는 행복이지만 그래도 한 명쯤은 나를 기억하고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마도카에게 호무라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었을 것이며, 호무라 또한 자신만이라도 마도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기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호무라의 경우 그 행복은 동시에 저주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볼 때 호무라가 생존조 중에서 가장 먼저 소울젬이 흐려졌다는 게 은근히 충격이었는데 ( 타츠야의 성장 상태를 봤을 때 사야카 원환 이후 1년이나 됐을까 의심스럽다 ) , 다시 생각해보니 마도카가 없는 세계에서 호무라가 1분 1초라도 숨쉬고 살았던 게 오히려 기적이었다. 냉정히 말해 호무라가 큐베에게 인체 실험당했던 것은 결국 그녀가 입을 잘못 놀린 탓이므로 자업자득이지만, 정인이 고작 리본 두 개만 남긴 채 사라지고 종국에는 자신조차 그 존재를 의심하게 된 판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다니 그런 거 어른도 무리다. 호무라 외의 그 누구도 마도카를 기억하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의 고독을 삭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쩌면 없는 사람에 대한 추억을 남과 공유할 수 없다는 면에선 호무라에겐 차라리 마도카가 죽은 것보다 더 상황이 나빴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도카가 없는 세계가 얼마나 싫었던 것인지, 호무라는 뒷골목에서 사야카에게 '이 곳에 있어서는 안 될 3가지'를 거론할 때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몰라도 그 안에 마도카를 포함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전에 자기 입으로 '마도카의 희생으로 세계가 바뀌었다'고 말한 주제에 말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마도카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걸 생각하면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호무라가 난 대체 언제 마녀가 되어 있었던 거냐고 절규했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한 몸을 오롯이 불살라 만든 룰, 그런데 이 세상의 모두가 마도카를 잊더라도 오직 단 한 명 절대로 잊어서도 부정해서도 안 될 의무가 있는 죄인인 자신이 그 룰을 어긴 더러운 오점이며 싸움의 숙명에서 도망친 비겁자였다는 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마도카에게도 호무라에게도, 상대는 분명 소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 둘이 이렇게 엇갈리는 것은 그 방향성이 너무 다른 까닭일 것이다. TVA 7화에서 쿄코는 사야카에게 자업자득의 인생을 권유하면서 '희망과 절망의 합계는 차감제로'라는 인생관을 설파했는데, 플러스가 있으면 당연히 그 짝패로서 마이너스가 수반하고 결과적으로 제로가 된다는 이 논리는 본작의 근간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법칙이다. 이것은 그 외에도 '친구가 너무 올곧다면 네가 그 아이의 분만큼 비뚤어져 주면 된다', '누군가를 구한 만큼 누군가를 저주하면서 살아간다'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되어 몇 번이고 재등장하며 당연히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에도 철저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TVA에서 쿄코-사야카의 관계를 보자. 각각 '이기적인 마법소녀'와 '정의의 마법소녀'로서 대립했던 두 사람. 토모에 마미의 사후 주인이 없어진 미타키하라를 차지하기 위해 찾아왔던 쿄코는 사야카의 정의감을 비웃으면서 인간을 마녀가 먹고 그 마녀를 마법소녀가 먹는다는 먹이사슬 이론을 내세웠다. 요컨대 마법소녀는 약해빠진 인간의 아득히 윗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포식자이며, 자신 또한 그 초인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6화에서 마도카의 돌발행동으로 소울젬의 비밀이 밝혀지고, 초인인 줄만 알았던 마법소녀가 사실은 좀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쿄코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난다. 사야카는 사야카 대로 악당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쿄코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에 혼란스러워 하며, 설상가상으로 히토미의 고백 건이 맞물리면서 마미같은 '정의의 사자'가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에 짓눌려 스스로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사야카에게서 예전의 자신을 겹쳐본 쿄코는 어떻게든 그녀를 구하고 싶어 자업자득의 모토마저 버리고 동분서주한다. 쿄코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사야카는 점점 망가지면서 사람이 아니게 되어갔는데, 우습게도 쿄코는 사야카를 만나고 거꾸로 사람으로 돌아가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그 먹이사슬 이론이 가족의 동반■■이라는 가혹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방어기제에 불과했을지라도, 5화에선 마법소녀는 인간 위의 포식자라며 의기양양하게 뽐내던 그녀가 그녀가 9화에선 담담하게 마법소녀의 진실을 밝히는 호무라에게 너 그러고도 인간이냐며 분노하는 모습은 꽤나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 사야카의 방에 서로를 마주 비추도록 놓여있는 이 빨간 거울과 파란 거울은 쿄코-사야카의 관계를 대놓고 비유하고 있다 >
이렇게 쿄코와 사야카는 서로의 방향성을 보충하며 천칭의 평형을 유지하는 관계였으며, 자신의 반쪽을 잃은 외톨이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철두철미한 차감제로의 법칙 위에 성립되어 있는 본작에서 플러스가 없는데 마이너스만 홀로 살아남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야카의 죽음으로 중심축을 잃어버린 쿄코가 어떻게든 그녀를 되살려 보고자 발버둥친 끝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결국 옥타비아와의 동반 ■■을 택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물론 그 때 호무라와 함께 빠져나와 다시 자업자득의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마법소녀에서 사람으로 돌아와버린 그녀에겐 더 이상 그럴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러는 것은 가족의 동반 ■■ 때 이미 죽어버렸던 사쿠라 쿄코를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리고 비록 색깔부터 짝패로 내정되어 있던 쿄코-사야카에 비하면 조금 돋보이지 않는 감이 있긴 하지만, 호무라-마도카도 이와 똑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친구가 너무 올곧다면 네가 그 아이의 분만큼 비뚤어져 주라는 마도카 어머니의 충고는 사야카-마도카/쿄코-사야카 외에 이 두 사람에게도 똑같이 대입할 수 있는 논리다. 호무라의 말마따나 마도카에게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자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실행하는' 강함이 있으며, 그녀가 남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면 내던지는 만큼 호무라의 루프는 가혹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도카가 +100만큼 올바른 일을 한다면 호무라가 -100만큼 비뚤어져서 천칭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만약 마도카가 친구 따윈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고 등 돌려 도망가 버리는 아이였다면 호무라는 마도카에게 신이 될 정도의 인과가 모이기 전에 손쉽게 루프를 끝낼 수 있었겠지. 호무라가 마도카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아주 간단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마도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루프의 난이도가 천정부지로 뛰어버리니!
쿄쿄-사야카와 마도카-호무라를 비교해서 말하자면, 쿄쿄-사야카는 둘이 나란히 손을 잡고 서서 같은 쪽을 보고 있는 관계일 것이다. 쿄코도 사야카도 타인을 위해 기적을 사용하는 것에서 시작해 현실에 부딪쳐 꺾였으며, 비록 한 때는 대립했지만 쿄코가 사야카에게 물드는 것으로 결국엔 같은 도착지로 수렴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후속작에서 기억을 되찾은 사야카가 호무라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면 쿄코는 고민 끝에 그것이 사야카와의 이별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도와 함께 싸워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도카-호무라는 서로 등을 맞대고 정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둘 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주제에 어느 쪽도 상대의 마음 속에서 자신의 비중을 완전 무시한 채 행동하며, 무엇보다 서로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너무 다르다. 넘버 원과 온리 원의 차이라고 할까. 생활환경의 차이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심하고 자존감이 없다는 데서 시작한 것은 동일하나 마도카는 기본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며 자란 반면에 호무라에겐 오직 마도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본작이 평범한 마법소녀물이어서, 호무라에게 천천히 교우 관계를 확장시킬 시간이 있었다면 그녀 또한 점차 마도카 외의 다른 사람들이나 자신에게도 호의를 돌릴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때도 여전히 그녀에게 마도카는 가장 소중한 사람일 테지만 여기까지 병들고 끔찍한 감정은 되지 않았겠지. 그러나 호무라는 마도카 이외의 중요한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포함해 전부 버리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나갈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해버렸고, 루프를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본래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져야 했을 호의는 오로지 마도카 한 명에게만 몰리게 되었으며 지킬 것이 잔뜩 있었던 마도카와는 달리 그녀에게는 마도카밖에 없었기에 몇 번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잔인한 세계를 결국 끝까지 사랑할 수 없었다.
"이대로 둘이서 괴물이 되어, 이런 세계 엉망진창으로 해버릴까? 싫은 일도 슬픈 일도 전부 없었던 일이 될 정도로..."
"나, 마녀는 되고 싶지 않아...싫은 일도 슬픈 일도 있었지만 이 세계에는 지키고 싶었던 게 잔뜩 있었으니까..."
모든 마법소녀를 위해 신이 된 마도카. 모두를 사랑하고 또한 사랑받으며,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지만 의외로 마녀가 되면 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다. 마법소녀가 되고 마녀가 되고 하느님이 되어도 최고의 친구 단 한 명만은 구원할 수 없는 박애의 하느님.
마도카만을 위해 악마가 된 호무라. 오직 한 명밖에 사랑하지 못하고 결국 고독하며, 마도카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지만 의외로 마녀가 되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 우주를 손에 넣어도 사랑하는 사람 단 한 명만은 갖지 못하는 편애의 악마.
모두의 기도를 낭비하지 않는 세계로 바꿨지만 자신은 이 우주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었지만 자신은 언제까지나 고독하고
마도카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호무라를 포함한 모두를 구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호무라는 무엇을 희생시켜서라도 마도카를 구하고 싶어 한다.
이 어찌나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두 사람일까...이 얼마나 한 발 잘못 내디디면 겹쳐버릴 정도로 가까우면서도 확연히 구분되는 평행선일까. 둘이 합쳐서 차감 제로. 마법소녀가 되면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는데도 계약해 버리는 애나 외톨이가 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도 제멋대로 폭주한 끝에 고독해져 버리는 애나 정말 안 좋은 의미로 천생연분이다. 서로 소중히 여겨서 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론 서로 상처 입히는 꼴이 되고 상대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전부 내던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서 그래놓곤 이걸로 그 아이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더욱 더 질이 나쁘다. 사실 두 사람의 방향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예전부터 참 화합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여기까지 대놓고 말해주니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요컨대, 신극의 이 난리는 지금껏 마도카와 호무라 사이에 쌓이고 쌓였던 엇갈림이 마침내 폭발한 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TVA 완결 당시 호무라의 헌신이 마도카에게 닿았다는 게 기쁘면서도 '그래도 마도카는 호무라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지. 이제 호무라는 쭉 자신이 마도카를 신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겠지.' 라고 씁쓸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설마 그것이 복선으로 쓰일 줄이야. 사랑에 막연한 동경 그 이상을 느껴본 적이 없을 마도카와 신앙은 물론 친애 감사 죄악감 등 온갖 감정이 뒤섞여 이젠 사랑이란 단어 외엔 표현할 방도가 없게 된 호무라 사이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고 태평양만큼 넓은 간극이 암담하다. 모르긴 몰라도 호무라가 자기 손을 턱 잡았을 때 마도카는 진짜로 무섭지 않았을까. 이제껏 따뜻하고 예쁜 사랑만 받아온 그녀는 이 세상에 그렇게 무겁고 깊은 사랑이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마도카는 호무라가 자신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 호무라는 마도카밖에 보고 있지 않았기에, 결국 이 두 사람이 파국을 맞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어떻게 보면 필연이기까지 한 것이다.
덧붙여 이 둘은 각자가 호무라/자기 자신에게 바라고 있는 모습도 판이하다. 꽃밭에서 호무라가 마도카를 붙잡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장면에서 마도카가 땋아준 머리카락이 저절로 풀리는 장면이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마도카의 눈에 쿨호무는 안경호무가 억지로 캐릭터 만들며 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테니 ( 솔직히 아주 틀린 해석도 아니다 ) 이제 그만 노력하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홀가분해졌으면 하는 건데, 정작 호무라는 안경 시절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아. 호무라짱은 충분히 잘했어.' 하고 말하는 마도카에 대해 호무라는 '아냐 난 아직 더 힘낼 수 있어!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야!' 라면서 영 이상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꼴이랄까. 아무튼 이런 걸 보면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마음이 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마도카로서는 호무라를 다독여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을 것이 거꾸로 그녀를 더더욱 파멸로 내달리게 하는 계기가 되다니. TVA 때부터 호무라의 지뢰밭 위에서 걷는 듯한 아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신극에서도 이런 식으로 우주급 핵지뢰를 밟아버릴 줄은 몰랐다. 본인에게 그러한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더 웃프다.
'반역의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신극은 TVA에 대해 '잠깐,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거야?' 라고 그 어깨를 붙잡는 듯한 결말을 냈다. 마도카가 신으로 성장하며 내렸던 결말이 TVA였다면 호무라가 악마로 성장하며 내린 결말이 신극, 그런 면에서 다시 한 번 마도카와 호무라의 관계성을 되짚어 보는 것은 신극의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도 상통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글을 썼다. 말하자면 머릿속에서 끝없이 꼬리 잡기를 하며 빙빙 도는 생각을 한데 정리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 보려는 개인적 발악의 일환이랄까.
TVA 때부터 그랬지만 이 얼마나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작품인가 싶다. 애초에 우로부치 작품군 자체가 거의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져서 결국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게 되어버린다. 신극이 의외로 훌륭한 해피 엔딩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복잡한 것은 이 행복이 언제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이 TVA에 대한 '반역'이었던 탓도 클 것이다. 마도카가 마침내 소원을 빌 때의 카타르시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TVA에선 그렇게나 그로테스크하던 마녀와 사역마들이 우리 편이 되어 싸우는 장면에서는 정말 감동했다. 마도카의 결단이 얼마나 고결한 것이었는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꼈다. 누가 뭐래도 그 소원은 잘못되지 않았던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만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도카는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어 힘들었고 호무라는 마도카가 없는 현실에 몇 년도 채 버티지 못했으며 사야카는 현실에 미련을 두고 있어서 쿄코와 마미도 외로웠다는 사실이 눈 앞에 대놓고 들이대어진 게 괴롭다. 예전 우로부치는 TVA에 대해 '마도카가 호무라를 구원하는 이야기' 라고 말했고 그 때는 나도 거기에 동의했지만, 신극을 보고 나니 그것은 정말로 구원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무라의 행동이 확실히 지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부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 탓이다. 그녀가 마도카를 붙잡지 못했을 때마다 느꼈을 어마어마한 고통을 생각하면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다 이 세계라면 언젠가 마도카가 무사히 어른이 되어 엄마와 함께 술을 마실 날이 올 거라는 것에 무심코 안심해버린 것도 사실이니까. 마도카의 희생이 눈부시게 아름다우면 아름다웠던 만큼 나는 미처 피우지도 못하고 묻혀버린 그녀의 또 다른 가능성이나 사랑하는 모두와 이별해야만 했던 그 결말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루미너스의 마도카 성장 기록을 보고 있으면 마도카가 얼마나 소중하게 태어나 사랑받고 자란 아이인지 사무치게 느껴지는데...호무라가 마도카의 성장을 뭉개버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도카에게 오로지 신이 되는 것으로만 성장해야만 할 의무는 없을 터, 더군다나 그녀가 마도카에게 요구하는 건 딱 하나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산다' 는 사람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행복이 아닌가.
본작의 시청자라면 모두 한 번씩은 생각해봤을 해피 엔딩을 쥐여주면서 그 과정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라니.
정말 악취미에도 정도가 있지.
사랑 싸움(...)이 흔히 그러하듯이 이 사단도 대화 부족으로 인한 표현 방식 ( =지키는 방식 ) 과 상대의 본심에 대한 해석 차이라는 아주 간단한 일로 생겨난 일인데도 도저히 좋게 끝날 것 같은 기분이 안 드는 것도 골치 아프다. 첫 사랑싸움이 그대로 결별로 이어진다든가 영문을 모르겠다. 마도카는 호무라를 원환해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하겠지만 호무라는 마도카가 모두와 헤어지는 것따윈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 상태를 계속 이어가면 ( 마도카가 보기엔 ) 호무라가 구해지지 않으니까 그건 또 마도카가 인정하지 않겠지. 호무라가 마도카에게 미움받아도 자신이 죽어도 세계가 멸망해도 마도카만 행복하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각오 완료하고 있다는 게 또 치명적인 엇갈림이다. 공식도 공식대로 '우리는 이 시리즈 더 뽑아먹을 거다' 라는 의지를 내비친 이상 순조로운 결말따윈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고.
< 예나 지금이나 마도카의 성장을 막아서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을 호무라이며
호무라가 마도카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는 카나메 마도카 본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장면은 둘의 관계를 정확히 짚은 연출이었으며 또한 3년의 시간을 넘어 후속작의 내용을 예언하는 꼴이 되었다. >
신극은 마도카와 호무라 개인별로는 해피 엔딩이지만, 마도카와 호무라의 관계 면에서 평가하면 단언컨대 최악의 엔딩이다. 마도카가 호무라의 소울젬에 손을 뻗었던 바로 그 순간이 이 둘이 함께 행복해질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소원을 깨뜨린 이상 두 사람은 반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씁쓸한 일이지만 확실히 호무라에게는 신의 뜻을 따르는 천사보다는 그 이치에 반역하는 악마의 자리가 더 어울린다. 마도카가 빛으로서 신이 된다면 그에 수반하는 그림자인 호무라 또한 악마가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 세상의 존명을 위협하는 악마를 만들어낸 것이 한 치의 그름도 없을 하느님이며 누구보다 하느님의 권위를 능멸해야 할 악마가 사실은 천사도 질색할 정도의 광신도라니 설정 한 번 멋지게 잡았다. 솔직히 이제야 간신히 세계관의 균형이 맞았다는 기분마저 든다. 천칭의 한쪽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 반대편엔 악마가 앉아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이제 여기까지 상황이 악화된 이상 속편이 어떤 내용이 될지는 솔직히 감도 안 잡히지 않지만 신극에서 마도카의 세계가 그 한계를 드러냈던 것처럼 호무라의 세계도 당연히 그림자를 드러내게 될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리라고 본다. 그리고 억지를 부려 만든 세계인 만큼 호무라의 세계는 마도카의 세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 더 잔혹하고 처참하게 무너질 테고, 마도카와 함께 할 기회도 마도카와의 인연도 전부 포기하고 간신히 손에 넣은 행복인 만큼 호무라는 말 그대로 악마같은 짓을 해서라도 악착같이 그 세계의 유지에 매달리겠지. 호무라 이지메 영화나 다름없는 신극이었지만 속편이 나오면 절대 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번에도 호무라가 마도카를 위해서 하는 일은 고스란히 마도카에게 재앙이 되어 떨어지고 마도카가 별 생각없이 뱉은 말 한 마디가 또 다시 호무라를 이상한 방향으로 내달리게 만들거라는 것이 벌써부터 뻔히 보인다.
이번에 다시금 느낀 것이지만,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역시 잔혹한 작품이다. 어린 소녀가 죽거나 절망하는 것이 잔혹하다는 게 아니라, 사람은 비단 악의뿐만 아니라 선의로도 충분히 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게 잔혹하다. TVA 때부터 적극적으로 악의를 갖고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고 싶어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큐베조차도 우주를 구하겠다는 선의로 움직이고 있지 않았나. 일례로 호무라의 악마화만 해도 마도카가 그렇게나 좋은 아이가 아니었다면 호무라는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마도카의 박애주의가 호무라를 괴롭게 하고 끝내는 그 마음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리고 만 것이다.
다만 신극 덕택에 호무라와 마도카가 서로를 제대로 마주보게 될 밑바탕 하나는 완벽하게 잡힌 것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대로 호무라가 이끌려갔다면 그녀의 인생은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를 구하지 못하고 그 친구 대신 싸운다는 각오마저 허무하게 좌절되어서 결국 그 친구의 희생에 영원히 얹혀가는 패배자로 끝나버리며, 마도카와의 관계는 끝까지 신과 신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다. 그러나 이번에 호무라는 간신히 마도카와 대등한 존재가 되어 그녀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고, 마도카는 싫어도 호무라에 대한 인상을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터, 속편이 나온다면 피차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많겠지. 본작은 완전히 잘못된 사람도 없지만 완전히 옳은 사람도 없는 작품, 두 사람 모두에게 과가 있는 이상 속편에서 필요한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개념인 '용서'나 '구원'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화해'일 것이다. 설령 그것과 그 마음이 상대에게 닿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 하더라도 시도라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여기까지 와서 좋은 끝이 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호무라와 마도카, 두 사람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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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이랑 댓글을 때려박아야만 할 것만 같은 글을 또 올려주셨네요. 우로부치식은 지독하지만 꾸준히 애청하는 분들이 많죠. 마마마도 그런 류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찌통인데 결국 우리는 나오면 또 보러갈겁니다;ㅇ<-<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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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부치 식 이야기 전개는 페이트 제로에서 캐스터의 입을 빌려 얘기했던 것처럼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 쉽게 말해 보는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점이 주 포인트인 것 같음 마마마는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는 달랐지만 TVA 만 놓고 보면 우로부치 스타일 고려했을때 꽤 좋게 끝난 마무리였는데 이걸 극장판에서 이렇게 뒤집어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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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부치 식 이야기 전개는 페이트 제로에서 캐스터의 입을 빌려 얘기했던 것처럼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 쉽게 말해 보는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점이 주 포인트인 것 같음 마마마는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는 달랐지만 TVA 만 놓고 보면 우로부치 스타일 고려했을때 꽤 좋게 끝난 마무리였는데 이걸 극장판에서 이렇게 뒤집어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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