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mbcsportsplus.com/kbo/news/?mode=view&cate=1&b_idx=99996228.000
‘이게 다 선수 잘못이야.’
팀이 부진할 때 주로 나오는 탄식이다. ‘이건 전부 감독 탓이야’하며 그 책임을 전부 감독에게 묻곤 한다. 이렇게 야구팀이 부진할 때면 흔히 나오는 ‘탓' 세 가지가 있다. '선수 탓, 감독 탓, 프런트 탓’이 바로 그것이다.
'선수 탓'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선수들이 나태하다', '야구는 안 하고 놀러만 다닌다'는 것이다. 정말 꼴찌 팀 선수들은 게으르고 나태할까?
지난해 9위에 그친 LG 트윈스는 2016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적지 않은 훈련량을 자랑했다. 특별한 지시가 없었지만, 선수들 스스로 야간 훈련을 소화했다. 하위권 팀 선수들의 훈련량은 절대 적지 않다. 이번 시즌 한화 이글스 역시 많은 시간을 훈련에 투자했다. 꼴찌팀 선수들도, 상위권 팀 선수들만큼이나 훈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이다.
2014시즌부터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한화. 정근우(70억 원)를 신호탄으로 이용규(67억 원)를 영입했고, 이듬해인 2015시즌엔 배영수(21억5천만 원), 송은범(34억 원)과 권혁(32억 원), 내부 FA인 김경언(8억5천만 원)을 잡았다.
2016시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리그 최고의 릴리버 정우람(공식 84억 원)을 데려왔고, 여기에 내부 FA인 김태균(84억 원), 조인성(10억 원)과 롯데에서 뛰던 심수창(13억 원)을 손에 넣었다. 외국인 선수 명단엔 현역 빅리거 출신이던 에스밀 로저스와 로사리오가 포함됐다.
하지만, 3년간 총 5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한화의 현재(5월 13일 기준) 성적은 10위다. 10개 구단 가운데 압도적인 꼴찌다. 반면 한화 선수단 전체 연봉 총액은 102억 1천만 원으로 압도적인 1위다. 선수를 사 모은다고 우승을 보장하는 게 아닌 셈이다.
LA다저스($248,321,662)와 뉴욕 양키스($221,574,999)는 메이저리그 전체 팀 페이롤 순위 1위, 2위에 올라있다. 13위의 캔자스시티 로열스($135,531,500)는 2015시즌 월드시리즈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화의 '선수탓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프런트 탓'은 어떨까? 프로야구단 직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비교적 높다. 본인이 야구단 업무를 원해서 하게 된 경우가 대다수다.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긍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생각대로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모든 결정은 대표와 단장, 더 나아가 구단주의 몫이기 때문이다.
선수, 프런트, 감독.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김성근 감독은 2016년 위기에 봉착했다. 계속된 논란 속에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사진=한화)
마지막으로 '감독 탓'을 생각해볼 차례. 오랜 기간 암흑기를 보낸 LG는 2013년 이전까지 수많은 감독을 영입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 심지어는 'LG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숱한 감독 교체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과거 '현대 유니콘스 왕조'를 건설했던 김재박 감독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긴 마찬가지.
한화 역시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김응룡 감독과 ‘야신’으로 불리던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 야구인은 "야구계 '3김'이 모두 감독직을 맡은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 시절부터 시작한 한화 암흑기는 김응룡, 김성근 등 대표적인 '명장'을 모두 데려온 뒤에도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시대에 역행하는 구시대 야구로 숱한 논란과 비판을 사고 있다.
아무리 선수를 사모으고 지옥훈련을 해도, 프런트를 비난해도, 감독을 바꿔도 팀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 야구단 운영의 기본적인 구조를 살펴보자. 프로야구단은 크게 프런트와 현장의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사장, 단장 등 구단 프런트는 구단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내부 살림을 살핀다. 현장에선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팀을 이끈다. 프런트와 현장이 팀의 성공이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때 구단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 '제리 크레스닉'은 구단주의 조건으로 위 세가지를 꼽은 바 있다. 첫째, 제대로 된 인재를 영입하는 것. 둘째, 야구단에 적절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셋째, 야구단 운영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잘 되는 팀들은 이 세 가지 원칙을 잘 지킨다. 지난 시즌 우승팀 두산 베어스나 신흥 강호 NC 다이노스가 대표적이다. 두산 오너는 야구단 사장에 오랫동안 구단에서 근무하며 야구단 운영에 정통한 김승영 사장을, 단장에는 야구인 출신의 김태룡 단장을 앉혔다. 감독직에는 포수 출신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김태형 감독을 선임했다.
또 이천 퓨처스 구장을 건립하고 FA 시장에서 장원준을 영입하는등 적절한 투자도 했다. 또한 일단 전문가들을 자리에 앉힌 뒤엔 큰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두산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기존 구단들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 NC 역시 이런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는 구단 가운데 하나다.
반면 안 되는 구단은 이 세 가지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LG는 과거 구단주의 지나친 간섭이 암흑기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지금도 얼마나 달라졌을지 의문이다.
한화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한대화 감독 시절까지만 해도 한화는 신인 드래프트와 선수육성, 영입에 대한 투자가 매우 인색했다. 또한 야구단 운영에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이 구단 수뇌부로 내려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식의 '묻지마 인선'이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한화가 최근 야구 흐름에 맞지 않는 옛 지도자들을 차례로 사령탑에 앉혔다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구단 운영 전문가 집단인 프런트의 의견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좋은 구단주의 3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견제없는 독주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한화 이글스(사진=한화)
표면적으로 한화의 김성근 감독 영입은 많은 한화 팬의 요구에 의해 이뤄졌다. 하지만 여기서도 생각해볼 점이 있다. 과연 프로야구단의 감독직 선임이라는 중대한 인사를 실체가 불분명한 팬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게 온당하냐는 것이다. 야구 감독 임명은 구단의 현재 전력과 앞으로의 비전, 구단이 추구하는 컬러와 얼마나 일치한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구단 운영을 맡은 프런트가 판단할 부분이지, 야구단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일반 팬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기업 경영으로 치면 계열사 인사를 소비자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셈이다. 누구도 기업을 이런 식으로 경영하지는 않는다. 프로야구단 역시 다르지 않다.
김성근 감독의 요구대로 구단 운영의 전권을 부여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구단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정승진 대표와 노재덕 단장. 두 사람은 김 감독 취임과 동시에 자리를 떠났다. 그 빈자리는 야구단 업무가 처음인 인사들이 대신 차지했다.
정상적인 구단은 감독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 프런트가 적절히 조율하고 설득하면서 통제력을 행사한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요구하면 거의 대부분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화는 팀 성적은 물론 미래를 위한 선수육성 분야까지 엉망이 된지 오래다. 감독의 부당한 요구에도 'No'라고 말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거라면, 구단 수뇌부가 무얼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김성근 감독이 SK 감독직을 물러난 뒤, 프로 복귀설이 나돌 때마다 거의 모든 구단들은 '절대 불가'를 외쳤다. 김 감독이 어떤 식의 야구를 하는지, 김 감독의 방식이 구단 시스템과 선수단에 가져올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화는 김성근 감독의 1인 지배 야구팀이 됐고,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 한화 구단 내에는 김성근 감독의 독주를 억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좋은 구단주의 3원칙 중 첫번째, 제대로 된 사람을 앉히지 않은 데서 시작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이미 나와 있다. 잘못된 자리에 잘못된 사람을 앉힌 것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올바른 사람들을 올바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한 사람, 구단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엠스플 뉴스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미나마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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